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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Feb 22. 2021

작가란 무엇인가?

<the Paris Reveiw>  밀란 쿤데라


떡국


올해 서른여덟 번째 떡국을 먹었다. 아마도 스물여덟 번째 떡국을 먹었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서른 번째 떡국을 먹으면서 작가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것 같다. 흰 바탕에 검은색 글자를 가로로 써내려 가며 몇십 장의 종이를 채워내는 일이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해버렸다. 글을 통해서 내가 성장하고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그 기분들 (이게 진짜 인지 가끔 의심이 들지만)에 매료되어 감히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엔 수많은 책이 있고, 수많은 작가가 있다. 그들의 책장에 나도 꽂힐 책을 쓰는 것이 나의 목표이고, 간절한 희망이다.




the Paris Review


그래서 올해 초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사이트가 있다. 그건 바로 <파리 리뷰>라는 문학잡지. 유명한 작가들을 같은 동료 작가들이 직접 인터뷰한 후 인터뷰 내용들을 소개하는 국제적인 문학잡지이다. (영어를 잘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theparisreview.org ) 영어의 장벽에 막혀 답답해했던 차에 혹시나 하여 검색해보니 우연히 국내에 인터뷰집을 도서로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필자가 가장 찾아 헤매던 '베드룸 북'을 드디어 찾은 것 같다.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르시아 마르케스, 무라카미 하루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등 정말 엄청난 작가들 (전부 소설 작가 들이지만)의 인터뷰 내용들을 간결한 챕터들로 밀도 있게 담아 놓았다. 인터뷰어도 작가이고, 인터뷰이도 작가라서 질문들과 대답의 밀도가 장난이 아니다. 가벼운 농담 듯 피식피식 웃게 되는 구간들도 많지만, 가끔씩 영혼을 채찍질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하는 진귀한 책이다.




베드룸 북


이 책은 나의 '베드룸 북'으로서 침대 곁에 놓고 자기 전에 한 작가씩 읽고 있다. 작가들마다 집필 방식, 주제를 도출하는 생각, 독자와 작가의 관계 등등 형형색색의 인터뷰가 아주 재미있다. 현재 필자에게는 1편밖에 없지만 (3편까지 나와 있다) 곧 2,3편도 읽을 예정이다.


글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 그것이 문학이든 과학이든 에세이든 뭐든 간에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발가벗겨진 몸으로 얼굴도 본 적 없는 낯선이 들 앞에서 춤추는 느낌 같다. 그러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도 매일 고군분투하며 종이와 씨름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게다가 그들은 세계적인 인정과 결과들을 만들어낸 진정한 작가들 아닌 가?


매일 밤 잠들기 전 한 명씩 만난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는 그들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느낌으로 귀 기울여 그들의 인터뷰를 숨죽이고 지켜본다.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지만 오늘은 1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밀란 쿤데라'의 인터뷰 중에 한 부분을 소개해본다.




밀란 쿤데라

주요 작품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스운 사람들>, <무의미의 축제>, <만남> 등등


인터뷰어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 왜 소극 형식을 채택했는지에 대해서 묻자 쿤데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소설은 오락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이 어째서 오락을 경멸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어째서 프랑스인들은 '오락'이라는 말을 그다지도 부끄러워하는 거죠?

위대한 유럽 소설들은 오락으로 출발했고, 모든 진정한 소설가들은 그 점을 그리워해요.
 실상 위대한 오락물들의 주제는 심각할 정도로 진지해요. 세르반테스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평생 추구해온 야심은 가장 심각한 질문을 가장 가벼운 형식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미학적인 야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경박한 형식과 진지한 주제는 우리 삶의 드라마가 갖는 진실을 즉각적으로 드러내 주고,
그 드라마들의 끔찍한 하찮음과 무의미함을 드러내 보여주거든요.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경험하는 거지요.
 


내가 처음 그리고 가끔씩 스스로에 자문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심각함과 진지함이다. 물론 삶에서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 중에 하나이고 그것이 가진 고유의 감정의 색체와 질감이 있다. 나는 심각하거나 진지한 것들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읽으며 가끔씩 뜬금없이 등장했던 장난스러운 묘사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는 코믹한 인물과 상황을 만날 때면 독자의 입장으로 당황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깊이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가끔씩 왜 이런 농담을 던지는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인터뷰를 읽고 나니 이제야 쿤데라가 왜 그런 농담 같은 상황과 인물을 던져주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심각함과 진지함을 기피하려고 하는 작가적 프로페셔널함과 그 명징한 사고가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그의 소설이 아니라 그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경박함과 진지함


그렇다. 나는 이상을 꿈꾸며 작가로서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진지함과 최대한의 논리와 이성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애인과 나누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언어들이나 친구들과 나누는 질 떨어지는 농담들에서는 이성이나 논 리따 윈 없으며 경박하기 그지없다.


서른여덟 번째의 떡국을 먹으며 돌아보니 나는 진지하기보다 경박하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겉으론 내심 '진지'하게 보이고자 용을 썼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는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두 가지를 모두 수용하는 지혜로움을 보인다. 경박함속에 진지함이 드러내는 것을 작가적 야심으로 삼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순간이다.




서른아홉 번째 떡국


재치 있고, 유연하고, 솔직하고, 쉬운 이야기들 속에 진지한 주제를 내포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성장했다 칭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려면 수많은 습작들을 써야 하겠지. 내년 이맘때 서른아홉 번째 떡국을 먹을 때에는 가장 심각한 질문을 가장 가벼운 형식으로 던질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작가의 말들을 상상하며 잠든다. 그가 가르쳐 준 것들을 평생 잊지 않길 바라면서 하지만 곧 또 잊어버릴 나의 경박함을 비웃으며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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