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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Feb 22. 2021

정독의 저주에서 자유로워지기

< 1만 권 독서법 > (2017)  인나미 아쓰시



'지식의 저주'보다 무서운 '정독의 저주'


책을 읽다 보면 내용 정리에 집착하게 된다. 시간과 돈을 들여 삶의 변화를 꾀하는 독서인데 읽고 나면 머리에 남는 것은 없고 책장에 책은 쌓여만 가다 보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읽었고, 어떤 것을 깨달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서적 위주로 일 년에 50~60권가량 읽는 나는 읽어도 남는 것이 없거나 변화가 더뎌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한 결과 읽기만 할 뿐 핵심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후 약 2년은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면 a4용지 10장 이상의 요약문이 나왔고 매우 뿌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요약문의 내용도 까먹게 되고 책의 개념도 전혀 떠오르지 않아 서평도 쓰기가 힘들어졌고 이런 방식으로 독서가 피로로 다가왔다. 뭐가 문제였을까?



하루에 1~2권, 일 년이면 700권가량의 책을 읽으며 서평까지 쓰는 괴물 같은 사람 있다. 그가 말하는 독서법에 대한 책은 괴물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담 없이 소화되는 음식처럼 듣기 좋은 음악처럼 자신의 다독 노하우를 전한다.




음의 배열을 빠짐없이 기억한다거나, 악기로 완벽하게 재현한다거나, 가사를 암기하는 게 음악을 듣는 본래의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음악을 듣고 자신 안에 무언가가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음악의 근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음악은 이렇게 부담 없이 즐기면서 왜 책을 앞에 두면 우리는 전투태세를 갖추듯 진지하고 심각해지는 것일까요? 음악을 들을 때처럼 독서를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p.29






왜 읽는가?




책을 읽은 결과로 어떤 지식이나 아주 작은 발견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작은 단편적인 것이라도 좋습니다. 무언가 인상적인 게 하나라도 남았다면 그 독서는 성공한 것입니다.

p.24



나는 책의 모든 내용을 암기하려 했던 것이다. 암기는 독서의 본질은 아니다. 나의 삶에 더 나은 행동과 결과를 불러오기 위해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 행위 자체에 집착하다 보니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 까먹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내 손을 보지 말고, 내가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같다.




저자는 책을 통째로 이해하려는 독서가 아닌 단 하나의 가르침만 얻어도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욕심 없이 독서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가벼운 마음 때문에 매일 책을 읽는 부담을 줄였을 것이고 서평 또한 편한 자세로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구체적으로 가벼워지는 독서법은 뭘까?






플로우형 리딩




한 권을 깊이 읽는 게 아니라 많은 책으로부터 '작은 조각'들을 모아 '큰 덩어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느리게 읽는 사람에게는 결정적으로 이런 방살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p.25



저자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꼼꼼히 천천히 읽는 독서법을 '스톡형 리딩'이라 칭한다. 그에 반해 넘어갈 부분은 넘기고 빠르게 읽을 부분과 느리게 읽을 부분들을 자유롭게 조절하며 책에서 필요한 핵심만 취하는 방법을 일명 '플로우형 리딩'이라 설명한다. 과거 학교 교육에선 스톡형 리딩을 강조했고, 이것에 익숙한 우리들은 정독만이 독서법의 전부라 생각한다는 것. 저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독서법인 플로우형 리딩을 주장한다. 




플로우 리딩이란 책의 쓰인 내용이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입니다.

p.33



저자의 플로우 독서법은 기존에 아는 '속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관점에 대한 것. 완벽주의적 책 읽기에 대한 비판이자 그의 대안으로 플로우 리딩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수집하고 정리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나의 필요에 맞게 선별하고 재편집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다독은 필수라 생각하고, 그렇다면 다독을 방해하는 요소를 고민하다가 '스톡형 독서'라는 문제점을 찾아낸 것이다. 플로우 리딩을 정확히 알기 위해 정독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독하기 (스톡형 리딩)

        1. 개념 :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다 기억하려 한다.

        2. 방법 :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3. 속도 : 모든 부분을 일정한 속도로 똑같이 읽는다.

        4. 기억 : 읽고 난 뒤 결국은 내용을 잊어버린다.

        5. 경험 : 독서의 경험이 힘들어지며 부담된다.


편하게 읽기 (플로우형 리딩)

        1. 개념 : 기억에 남는 것만 취하고, 나머진 버린다.

        2. 방법 : 목차를 정독 후,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

        3. 속도 : 빠른 부분은 빠르게, 느린 부분은 느리게

        4. 기억 : 읽고 남은 것만 기억하자.

        5. 경험 : 만족감이 높아지며 자유로워진다.





아쉬운 점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집에서 9시 이후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자녀들과 독서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책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각장 입시와 취업 교육에 질려버린 우리들은 책 읽기를 힘들어하거나 재미 위주의 편향적 독서에 빠지기 쉽다. 이 책은 독서를 어려워하는 입문자들에게 편한 마음을 갖게 해 주며 하루 한 권 읽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노하우와 경험을 통해 증명한다. 고로 독서 습관을 잡고 싶지만 노하우가 부족한 이들에게 아주 유용한 실용서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독서가 이미 생활에 붙어있고 이제 독서를 글쓰기와 연계하며 자신의 생각을 넓혀가고 싶어 하는 중급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유용하진 않다는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가 있다. 이 말은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플로우형 리딩이 가능한 책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며 이 방법으로는 그런 책만 읽을 수 있다는 단점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칸트, 노자, 공자, 마르크스, 니체 등 오래오래 다시 읽고 리라이팅 해가며 느리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동서양 고전이 참 많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결국 알게 되지만 결국 어느 순간 고전으로 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고전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플로우형 리딩으로 읽을 순 없다.




가볍게, 달을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잠시 잊고 있던 독서의 목적과 즐거움에 대해 배웠다. 전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저자의 독서 노하우와 팁들은 독서가 어려운 이들에게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줄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이다. 나 또한 너무 완벽한 독서, 완벽한 서평, 완벽한 깨달음의 강박에서 벗어났다. 하나라도 얻는 것이 전부를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낫다. 고로 완벽해지지 말자. 가볍게, 달을 보자.






1만 권의 독서법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 인나미 아쓰시

번역 | 장은주

발행 | 연준혁

출판 | 위즈덤 하우스

발행 | 초판 8쇄 2017년

불량 |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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