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리를 기른 것은 여자 친구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 당시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고,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나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여자 친구와의 생활은 마찰 없이 순조로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반 지하를 탈출해 2층 투 룸으로 이사했다. 창을 열면 사람의 발이 아닌 사람들의 정수리가 보인다는 것은 나의 지휘가 올라간 듯한 즐거움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때쯤 여자 친구 어머니가 등장해서 자식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며 헤어지라곤 한다. 물론 나도 여자 친구의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어머니는 가난한 예술가를 좋게 봐주셨다. 본인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었지만 꽃 피우지 못했던 터라 같은 예술가를 지지해주신 것이다. 개방적이고 정감이 넘치시는 분이라 거리감 없이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말을 하셨다.
“예술하는 남자가 머리 기르면 멋져 보이더라.”
지나가던 머리 긴 남자를 보고 한 말이지만 나는 이 한마디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유일한 점은 머리밖에 없던 터라 머리 기르는 일은 중요했다. 누군가 나의 외형을 결정하는 것을 방관하는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길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의 연애기간 동안 여자 친구와 어머니가 원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나답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들이 요구한 적 없었지만 그렇게 살았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의 감정은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나 다움을 버리고 살아가며 내 생활 태도, 소비 습관은 엉망이 되었다. 경제적으론 여자 친구에게 의존도가 높아지고 작품 활동을 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이 생기며 그로 인해 생기는 내적 불안감은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를 포장하는 말들만 하게 만들었다. 말도 개판, 생각도 개판, 행동도 개판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여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했고, 그렇게 나의 지상 거주는 막을 내렸다. 갑작스레 받은 이별 통보에 정신없이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지금 사는 반 지하로 이사 왔다. 이 모든 과정이 이별 통보 후 일주일 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사하는 그 과정에서 여자 친구에 대한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기르던 고양이 두 마리를 놓고 온다는 것은 슬펐지만 여자 친구에 대한 일말의 감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사 짐을 풀고 홀로 누워있던 그 날밤. 분노, 원망, 그리움, 후회 그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는 완전한 공허함을 느꼈다. 이런 공허함을 느끼다가 소시오패스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무서웠다. 그래서 뭔가라도 하자고 생각하며 곁에 보이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크누트 함순의 소설 <굶주림 >(1890) 을 읽었다. 주인공이 느끼는 뼛속 깊이 파고드는 가난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과 나의 모습이 똑같아 보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나의 공허함의 이유는 이제 여유로웠던 경제활동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첫 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웃고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곧 화장실 변기 사용과 가스 안전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놓더니 월세 입금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안 된다는 마무리 문장을 콕 박고 떠났다. 많은 집주인들을 만났지만 보통 이 정도로 간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울을 보고 깨달았다. 내 긴 머리에 놀랐던 것이다. 그 세대 어른들에게 긴 머리는 반가운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끝났으니 머리를 자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머리를 자르고 싶진 않았다. 그 머리를 자른다면 지난 몇 년간 살아온 나의 시간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 연애기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붙잡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러자 곧 땜이 무너지고 쏟아지는 물처럼 감정들이 공허했던 내 마음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 감정들을 한 단어로 정리해보자면 ‘수치심’이었다. 그 몇 년의 동거 기간 후 내게 남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었다. 몇 년을 돈 많은 여자 친구와 그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 다움을 버리고, 삶의 태도까지 엉망으로 산 그 마음. 나의 노력과 실행력으로 내 인생을 개척하는 것이 아닌 남에게 기대려 했던 그 마음. 어린아이가 사탕을 달라고 졸라대는 듯 받으려고만 했던 그 치졸했던 마음. 그 가난한 마음 때문에 나는 공허했던 것이다.
나의 긴 머리는 나 다움을 버린 나에게 스스로 내린 형벌의 상징이었다. 보통 이쯤이면 비장한 음악과 함께 당장 가서 머리를 잘랐겠지만 가난한 마음을 가진 나는 몇 개월 동안 머리 자르는 것을 미루었다. 꼴도 보기 싫은 이불 킥 백만 번을 해도 시원치 않을 과거이지만 그런 과거를 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반년이 지나갈 때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로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소 내 긴 머리를 좋아하던 미용실 원장님은 나보다 내 머리를 아까워하는 듯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 긴 머리 잘 어울리셨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과거의 어떤 기억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것은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를 덮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도 나다. 원장님에게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마지막 말이었다.
“ … 이제 잘라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