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고양이

by 진지우기

반 지하 창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 발목과 여러 종류의 바퀴들 그리고 고양이다. ‘나비’라고 이름 붙인 녀석은 작년 여름쯤 대문 앞에서 만났다. 문 앞에 주차된 차 밑에 녀석의 새끼들이 배고픔에 지쳐 밖으로 뛰쳐나왔고 우연히 나와 마주친 것이다.


몸을 숙여 살펴보니 지칠 대로 지친 나비가 보였다. 홀몸이라면 분명 도망갔겠지만 배가 고파 구걸하듯 울어대며 내 발아래까지 와버린 새끼들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목놓아 울어대는 새끼들 때문에 얼른 사료를 사 왔다.


먹느라 정신없는 새끼들과는 반대로 나비는 깊숙이 몸을 숨긴 채 인간과 너무 가까이 있는 새끼들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시달린 듯 보이는 나비의 눈빛이 너무나 익숙했다. 그건 바로 반지하 생활자의 눈빛이었다.


그렇다. 나비는 새끼들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해 불가피하게 차 아래에서 반지하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기척을 숨기지 못하는 새끼들 덕분에 인간들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고 그런 관심들 중에는 원하지 않는 관심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어쩌냐 하는 우려와 걱정의 말들, 위생적 관점에서 쏟아지는 불만들, 새끼들을 향한 카메라 셔터음 등 그런 여러 가지 시선들을 하루 종일 받아내느라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반지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주변의 시선이다. 므흣한 상상이 현실이 되길 꿈꾸며 방 안을 쳐다보는 이상한 변태들부터 어두운 밤길에 환하게 켜진 창문을 쳐다보는 행인들의 본능적 까지 외부의 시선들을 안에선 통제할 수 없다. 그보다 슬픈 것은 그들의 시선의 목적이 나라는 존재를 보고 싶어 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어떤 이미지가 보이길 기대하는 것이다. 특히나 변태들은 그런 쪽에서 매우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목적 없는 시선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사는 반지하 생활을 나비는 경험한 것이다. 반 지하 동지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외면할 순 없었다. 그렇게 새끼들의 야식 담당이 되어버렸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틈 바구니로 나비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우린 처음 서로를 봤고 그런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다.


두 달이 지날 때쯤 새끼들과 나비는 사라졌다. 누가 데려간 것인지 각자의 길로 떠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작스러운 사라짐에 나비는 다시 자유를 찾은 듯 보였다. 밤이 되면 나비는 높은 담벼락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골목 입구에 내가 보이면 마중을 나오기 시작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 방 창문 앞까지 찾아왔다.


반 지하 창문을 보는 존재 중에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찾아준 것은 ‘나비’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고 사료와 물을 내밀고 다 먹을 때까지 떨어져 기다려준다. 다 먹은 후 유유히 떠나면 그릇을 치운다. 다른 생명이 나를 정확히 인식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필요에 내가 응답하는 것은 사랑의 과정이다. 우연히 만났지만 길고양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것은 나에겐 소중한 감정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밤에 찾아오던 녀석이 아침에도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침과 저녁을 제공했다. 마른 몸도 살집이 제법 찼고,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골목 어귀에서 나를 기다리는 녀석 때문에 귀갓길은 즐거웠다. 나는 녀석과 더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창문 밖이 아닌 방안에 사료를 놓았다. 그 의미는 ‘내가 널 외롭지 않게 해 줄게.’였다. 방에만 들어온다면 위험한 삶 대신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제공할 계획이었고 나와 나비는 서로를 길들이며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쌓게 될 것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창문을 넘어 들어오지 않았다. 관계가 발전했음에도 서로의 선을 지켰다. 오히려 나의 이상 행동에 다시 경계모드를 다시 취하며 낯설게 반응했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제안을 거절 당해 상처를 받았는지 나도 차츰 나비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그러다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사람이 나비에게 밥을 주는 것을 목격했다. 알아보니 길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최소 5~6군데 집에서 얻어먹고 산단다. 진한 배신감에 아침 급식을 끊었다. 저녁도 주 7회에서 5회로 줄였다. 나의 변심을 알아챘는지 녀석도 방문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고 결국 발길을 끊었다.


시간이 흐르고 배신감이 누그러들 때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길고양이들은 얻어먹으며 마음에 드는 집에 눌러살지 않을까?’ 분명 나같이 동거를 제안하는 집들이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


녀석은 반 지하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 서로의 형편에 기대거나 서로를 소유해선 안 된 다는 것.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경계지대는 창문까지 라는 것. 그 선을 넘어서면 관계가 발전하지 않고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반 지하 생활에서 ‘가난’ 외에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의 절제’ 다. 외로운 마음에 덥석 손을 내밀고 인연을 맺는 것은 고된 반 지하 생활자 하나를 또 만드는 일이다. 나보다 늦게 반 지하 생활을 했지만 나비는 잘 알고 있었다. 외로움과 사랑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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