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론이 뭐야?

by 진지우기

2017년. 지금 반 지하로 이사오며 연극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던 어리석었던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이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당시 내가 붙잡았던 것은 연극이었다. 대본을 쓰기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했지만 마땅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강한 외침이 들렸다. 지금은 녀석의 정체가 불안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당시엔 그 소리가 창조적 영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안의 외치는 소리를 기쁘게 받아 적으며 대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지금의 H를 만나기 전이었고 갖은 노력으로 겨우 올라간 2층 방에서 다시 반 지하로 떨어진 터라 미래는 더 암울해 보였다. 게다가 결혼까지 고려했던 전 여자 친구와 하루아침에 관계가 끝나버리고 나니 결혼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결혼이 의미 있으며 결혼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료들과 책을 읽으며 결혼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보물 같은 책을 만났는데 그 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결혼해도 괜찮아> (솟을 북, 2010)였다. 이 책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후속 편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선 자아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지로 떠나 자신을 찾아가며 회복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후속 편인 <결혼해도 괜찮아>에선 그녀가 외국 국적인 운명의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전편에선 전 세계인이 부러워했던 자아 찾기와 아름다운 로맨스를 보여줬다면 후속 편에선 결혼이라는 현실을 만나 두 사람이 어떻게 흔들리고 성장해가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글을 통해 결혼이란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많이 배웠다.


여기서 받은 영감으로 결혼과 관련된 5 커플의 이야기를 5개의 에피소드로 만들어 서로 묘하게 얽히는 옴니버스 형식의 대본을 썼다. 제목은 많이 고민 끝에 결혼의 옛말인 ‘가취 지례’라고 붙였다. '혼수 갈등', '불륜', '사실혼', '재혼의 어려움' 등 등장하는 소재들은 다소 어둡지만 '서로를 배워가는 것이 결혼에 대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자세'임을 주제로 잡았기에 우울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올렸다. '결혼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에서 '결혼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나의 판단을 갖게 되니 만족감도 크고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까지 느꼈다.


주최 측에서 계획한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본 직후 관객들과 소감을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라는 시간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공연을 본 사람들이 내가 비혼이나 독신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까지 내가 비혼 주의를 넘어 결혼 혐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놀랐다. 또 어떤 노신사는 매우 진지한 어조로 '젊은 사람이 결혼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오히려 너무 결혼이 하고 싶어 그렇게 쓴 것인데 그런 반응이 참으로 놀랐다.


그 날 받은 질문은 다양했지만 궁극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결혼하라는 거냐? 하지 말라는 거냐?"


결혼을 '하냐', '안 하냐' 보다 결혼에 대한 태도, 가치, 의미에 대해 다루고자 했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객들은 결론만을 궁금해했다. 매우 단단하고 강력한 벽이 있음 깨달았다. 가치와 의미보다 결론이 뭔지가 우선시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결론을 알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고, 판단을 내리면 그 사안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선택 이후에 끝나는 것이 있을까? 전공을 선택하고, 학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주거지를 선택하고, 취미를 선택하고, 휴가지를 선택하는 등 모든 선택들을 살펴보면 선택한 이후 그 선택에 대한 자발적인 책임과 행동이 함께 할 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C라는 말처럼 살아감에 있어 '선택'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선택을 하는 순간 책임과 행동이 따라온다. 결혼이라는 것도 단순히 보면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택 안에 책임과 행동 따른다.


A와 B 회사 중 어떤 선택이 옳을까? C와 D 제품 중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일까? E와 F 중에 누구와 더 친하게 지내야 할까?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라면 둘 다 옳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각 선택에 따른 책임과 행동까지 따져보야 한다. 물론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곰곰이 따져보지 않는다. 그것보다 아주 쉽고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런 사고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목표를 잃지 않도록 돕지만 선택을 너무 단순화시켜고 쉽게 판단하거나 결론 지어 더 이상 생각하게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게 습관이 되면 아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만나도 아주 쉽게 판단하고 싶어 지고 선택 이후에 대해 고려하지 않도록 만든다. 어떤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선택하고 이후에 붙게 될 책임과 행동 때문 아닐까?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를 다시 한번 돌아봤다. 그러자 곧 나의 문제가 보였다.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자료조사와 공부를 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써냈음으로 '나는 결혼을 안다.'라는 판단을 내려버렸다. '결혼의 결론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마무리 지어버리고 관객들에게 내 결론을 풀어내며 털어버린 것이다. 결혼이란 무엇인지? 어떤 결혼이 좋은 것인지?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안다고 결혼에 대한 나의 책임이나 행동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혼에 대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방대한 글을 써낸다고 해도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결혼을 실제로 하고 그 생활을 책임지고 매일 행동하며 살아가야 '결혼을 선택했다.'라고 할 수 있다.


앨리자베스 길버트가 자신이 만난 운명적 남자와 결혼할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책임지고 행동했기에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결혼을 했다고 해서 결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결혼이 해피엔딩인지 비극인지는 이야기의 끝에 가봐야 한다. 결론은 결론을 보기 전까진 결론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고 묻고 싶어질 때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지금 책임지고 싶지 않거나 행동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보는 게 아닐까? 결론을 안다고 끝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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