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의 사람과 산다는 것.

by 진지우기

나는 H와 3년 넘게 살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는 나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해야 할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과 초조함에 정신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H는 가볍게 그날의 기분을 엉성한 곡조에 맞춰 다양한 톤으로 노래한다. 노래로 부족한지 몸을 일으켜 춤 까지 춘다. 글로 설명하려니 참 힘들지만 그녀는 힘들 때는 힘듦을 표현하는 춤을 추고 기쁜 때는 기쁨의 춤을 춘다. 지각을 했을 때는 지각했다는 춤을 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웃기다.


H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너무나 사랑한다. 심지어 모든 장면을 다 외우고 있어 어떤 장면의 이미지만 보고도 어떤 작품의 어떤 장면인지 바로 맞춘다. 한번 디즈니에 꽂힌 날은 하루 종일 디즈니 노래만 부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으로 풍덩 빠져있다. 그럴 때 보면 H는 디즈니 만화 속 공주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는 H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가만히 있질 못한다.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고난도 감수한다. 그래 봤자 남의 강아지 남의 고양이라고 넘기는 나와 달리 그녀는 동물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동물들의 마음을 자신이 직접 말로 표현해준다. 한 번은 그런 유튜브를 해보면 어떻냐고 제안했지만 부끄럽다며 부끄러움의 춤을 췄다.


노래와 춤만으로는 부족한지 그녀는 자신만의 다양한 놀이를 만들길 좋아한다. 어찌나 잘 만드는지 그 놀이의 종류와 스토리가 너무나 많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녀는 내 옆에서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며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놀이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엔딩이다. 결국 내가 H에게 져서 벌칙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결론으로 끝난다.(끝나야 한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비생산적이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일은 전혀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나는 H와 정반대다. 말수가 적고, 조용하게 일어나고, 조용하게 걷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니 조용한 곳만 찾아다닌다. H는 이런 나를 '할아버지~'라고 놀리며 나를 위해 즉석에서 직접 작곡한 트로트를 불러주기도 하고 재롱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그녀를 만나며 알게 된 것은 내가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밝고 쾌활함을 유지하며 웃음을 찾는다. 반면 나는 조용하게 지내다 못해 지루함을 느끼지만 그녀는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채운다. 남들이 보면 그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외향적 인간으로 보겠지만 같이 살아보니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밝게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하루하루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힘들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기보다 밝고 쾌활하게 받아치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공통분모는 둘 다 예술 전공을 했다는 것이고, 둘 다 경제적인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쾌활하게 상황을 헤쳐왔고, 나는 다소 우울한 방향으로 끌어왔다.


H는 자신이 나와 살게 된 것은 너무 조용하고 지루한 나의 삶에 활기를 주기 위한 신의 계획이라 말하곤 한다. 그녀는 농담처럼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짜 신의 뜻이라 믿는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은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돈이 많거나, 원하는 직장이나 학교에 붙거나 원하는 상을 받으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질 수 없다면 소용없다. 지금 이 순간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쌓여 미래가 되는 것이니까... 지금 행복해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행복해진다. 그런 면에서 나의 H는 지금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고 있다. 신은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후회로 살아온 나에게 H를 보내주셨다. 그녀를 통해 무언가 배우라는 것이다.


중세 시대엔 왕들은 자신의 곁에 항상 광대를 두었다. 모든 부와 지위를 가졌지만 왕들도 스스로 웃음은 가질 순 없었나 보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여전히 스스로 웃음을 만들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전문 개그맨들의 콩트나 잘 기획된 영상들을 통해 웃음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콩트나 프로그램도 H가 보여주는 것보다 가치 있을 순 없다. 단지 '웃음' 자체 만을 쫓는 것이 아닌 삶의 모든 순간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광대나 다른 누구가 만들어주는 웃음이 아닌 자기가 자신을 웃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분명 엄청난 능력이다.


H는 농담으로 말했지만 나는 믿는다. H를 만난 것은 신의 뜻이다. 그리고 신은 나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은 바로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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