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어딘가. 지도를 가지고도 찾기 힘든 해발 600m 골짜기. 약초를 캐고 나무에 오르며 이곳에서는 자기가 대통령이라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남자. 이내 몇 년에 걸쳐 손수 지었다는 허름한 움막으로 돌아와 돌밭을 일구어 만든 아담한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따오더니 고추장에 넣고 쓱쓱 비빈다. 그러고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저녁상이라며 껄껄대며 웃어댄다.
요즈음은 홀로 산에 사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자연 속의 삶을 들여다 보고 복잡한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모습을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나도 그런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는 시청자 중 한 명이다.
나는 도시에 산다. 도시에 살면서 TV 속에 나오는 자연인의 삶을 동경한다. 도시에 사는 것이 힘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음 한 켠에는 자연 속에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했기 때문일까?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에서의 삶을 꿈꾼다.
“큰 아이 대학 가면 나는 자연인 하러 산으로 갈 거야!”
몇 년 전부터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건네고 있는 말이다. 내 말에 아내는 별로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당신은 겁이 많아서 산에서 못살아요. 그리고 벌레도 무서워하잖아요. 자연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도시에서 자라서 밭일도 못할 텐데… 그러지 말고 연습 삼아 주말농장이나 한번 해봐요”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 단지 뒤쪽에는 그린벨트 지역이 있어서 주말농장으로 분양하는 공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저녁마다 아내와 산책하며 주말농장을 가꾸는 사람들을 자주 보곤 했다.
“주말농장에 자리가 있을까? 이번 주말에 한번 가볼래요?”
그렇게 아내와 함께 주말농장을 구경하러 가게 되었고, 한 평 남짓한 우리 가족의 농장을 분양받았다.
TV로만 보던 텃밭을 가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종을 이것저것 사서 한 고랑 한 고랑 옮겨 심었다.
“상추는 간격을 얼마나 띄어야 하지?”
“모종은 얼마나 깊게 심어야 하지?”
“심고 바로 물을 주어야 하나?”
“고추 지지대는 언제 설치하는 거지?”
이웃 농부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쉽지 않던 모종 심기를 마무리했다. 한 주간이 지나고 다시 찾은 우리의 텃밭에는 지난주보다 싱싱해진 모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종을 옮겨 심은 지 3주 만에 우리는 처음으로 상추를 수확하게 되었다. 직접 수확한 상추를 TV 속의 자연인처럼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도시에서 느끼는 자연인의 기분. 나쁘지 않았다.
땅은 정직하게 우리가 심은 것들을 그대로 자라게 해 주었다. 상추, 고추, 오이, 토마토, 호박, 깻잎, 가지 그리고 감자. 그렇게 우리 가족의 농장에는 정성스레 가꾸어 가는 싱싱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오늘도 검은 봉지 한 가득 직접 수확한 채소들을 바라보며 아내와 나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이 피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인을 꿈꾸며 오늘도 도시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