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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한산모시문화제, 오감 체득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 2

by 전병권

한산모시문화제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섬유문화 중심의 전통 계승형 축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된 '한산모시짜기'는 그 자체로 대단한 문화적 자산이지만, 그걸 지역 축제의 형식 안에 어떻게 녹여내느냐는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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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출발, 명확한 정체성

축제는 한산모시관, 모시문화관, 문화원 등 기존의 모시문화 공간을 무대로 펼쳐졌다. 새로운 무대를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이 확보돼 있었고, 이는 예산 절감과 물리적 효율성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이었다. 실내외 공간과 곳곳에 마련된 더위 휴식 공간, 친환경을 실천하는 다회용기 운영까지, 이 축제는 화려한 겉치레보다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을 택했다.


개막식에는 불꽃놀이도 드론쇼도 없었다. 대신 전통 한산모시로 만든 의상 퍼레이드와 한산 모시 태권도복을 입은 선수의 공연으로 서막을 열었다. 일부에겐 밋밋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 절제된 출발이 축제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지역 어르신들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길쌈놀이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축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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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은 부담 없는 방식으로 전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인조풀장에서 물놀이를 즐겼고, 어른들은 주막에서 전통음식을 맛봤다.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도 축제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였다.


소통 채널 확대

이 축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실시간 SNS 활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우천 소식이나 현장 상황 변화가 빠르게 공지되었고, 주요 장면들이 축제 SNS 계정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관람객과의 소통 채널로 기능했다. 정보 전달의 혼선 없이 운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축제의 생생한 현장감까지 전달하는 섬세한 운영이었다.


넘어야 할 산들

그럼에도 이 축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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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시대, 전통 축제의 새로운 과제

예전보다 빨리 찾아오는 무더위와 높아진 습도는 전통 축제 운영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길쌈놀이 같은 전통 행사의 주역인 고령 참가자들에게는 체온 조절 능력 저하로 인한 열사병 위험이 심각한 문제다. 축제의 전통성을 지키면서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운영 방식이 시급하다.


행사 시간대를 새벽이나 저녁으로 조정하고, 충분한 그늘막과 냉방 시설을 확충하며, 의료진 상주와 응급처치 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나아가 축제 시기 자체의 조정이나 실내 공간 활용도 확대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다.


체험의 깊이와 주도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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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 콘텐츠는 존재했지만,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감각은 부족했다. 지금의 구성은 여전히 관람 위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히 모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짜보는 것, 장인의 손끝을 따라 관람객의 손도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 외국인과 청소년, 젊은 세대까지 품을 수 있는 오감형 콘텐츠가 보다 전략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모시옷 착용률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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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상징인 '모시옷' 착용률이 낮다는 점도 아쉬웠다. 모시옷 대여와 인증 이벤트, 모시 패션쇼 등의 프로그램이 과거에 비해 개선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접근성 면에서 확대의 여지가 크다. 축제의 핵심 메시지인 모시 의상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체험되지 않는다면, 축제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한산읍성과 연계 부족

한산읍성과의 연계도 아쉬웠다. 읍성 인근에 부스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는 공간적 연계일 뿐 내용적 연계라 보기 어려웠다. 유서 깊은 한산읍성을 진정한 축제의 무대로 삼으려면 야간 해설, 복식 체험 투어, 역사 연계형 콘텐츠 등이 필요하다. 읍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살아있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소비 구조

모시 제품이 고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수제 특성상 당연하다. 하지만 입문자들을 위한 소품이나 저가형 실용품, 키트 등이 함께 마련된다면 관람객의 축제 경험은 일회성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체험에서 구매로, 구매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구조야말로 지역 전통의 경제적 지속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안전과 편의성 개선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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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로 인한 프로그램 문제 외에도 기본적인 편의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 축제장 주변의 기반시설 정비는 시급한 과제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인도는 나무와 쓰레기가 정리되지 않았고, 횡단보도 페인트도 지워져 도보 이동자들에게 안전 문제를 야기했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의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먹거리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다. 최근 대부분의 축제에서 먹거리는 체류 시간과 만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계절감과 향토성이 느껴지는 한 접시가 축제의 기억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전통 주막 외에 선택지를 넓히고, 지역 청년 셰프나 주민들과 협업한 먹거리 콘텐츠가 추가된다면 축제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지역 전체 축제가 되려면

더 나아가 축제장을 벗어난 지역 연계형 콘텐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산이라는 마을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연결되려면, 숙박, 골목, 생태, 장인, 예술공간 등이 유기적으로 엮여야 한다.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축제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여정, 축제가 지역을 깊이 있게 탐험하는 여행이 되고, 여행이 지역에 머물게 만드는 서사가 되어야 한다.


전통이 오래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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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35회 한산모시문화제를 방문하며 하나의 전통이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은 것을 잘 짜왔고, 잘 엮고 있었다.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하려는 노력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산모시문화제가 오늘날까지도 섬유문화를 이어가고 있고, 그것을 지역의 이름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지만, 전통은 남기고 잇는 게 아니라 함께 짤 때 비로소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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