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자체는 왜 랜드마크를 만들수록 실패할까

by 전병권

랜드마크는 본래 ‘땅에 표시한다’는 뜻에서 출발했다. 항해사들이 육지를 가늠하던 산과 바위, 나무처럼, 눈에 띄는 자연물은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며 랜드마크는 점차 인공 구조물로 바뀌었다. 거대한 조형물, 탑, 타워, 동상들이 도시 중심에 세워지며, 이제는 방향이 아니라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도시 인지이론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케빈 린치(Kevin Lynch)의 저서 『The Image of the City』를 보면, 현대 도시계획 이론에서 인간이 도시 이미지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는 경로(Path), 경계(Edge), 지역(District), 결절점(Node), 그리고 랜드마크(Landmark)로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랜드마크는 도시에서 중요한 구조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에게 기억을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문제는 오늘날 지자체들이 이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데 있다.


크기의 환상, 예산의 착각, 의미의 부재

과거의 랜드마크는 기능이 없을수록 더 강렬하게 인식됐다. 에펠탑, 피라미드, 고인돌 등은 과시와 상징을 위한 기념물이었고, 일종의 ‘쓸모없음’이 오히려 역사성과 상징성을 부여했다. “우리는 이만큼 낭비해도 되는 존재”라는 선언은 때론 전쟁 억제력까지 발휘했다.


고인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돌을 옮기고, 통나무를 깔아 수십 명이 동원되어 흙을 쌓고 다시 걷어내는 작업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이는 과시가 생존 전략으로 작동했던 인류사의 오랜 패턴을 보여준다.


현대의 지자체들도 이와 유사한 심리를 보인다. 전국 대부분의 시군이 '우리만의 상징'을 세우겠다며 랜드마크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추진 과정에서 중단되거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의 외면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지자체들이 '관광시설을 만들겠다'면서 동시에 '랜드마크를 세우겠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두 목적은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관광시설은 '기능'이 핵심이고, 랜드마크는 '상징'이 핵심이다. 실용성과 과시는 양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성공적인 사례는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는 전제 조건을 달고, 두 요소의 조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롯데타워, 파리 퐁피두센터 등은 실용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구현한 대표 사례다.


문제는 많은 지자체들이 이러한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중간 어디쯤 어정쩡하게 놓여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실용도, 상징도 잡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되기 십상이다.


남해군에도 랜드마크들이 있다. 그중 최근에 성공한 사례인 '독일마을'은 독일에서 귀국한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조성된 이 공간은 분명 의미 있는 출발을 가졌고,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서며 이국적 정취로 큰 주목을 받았다. 랜드마크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은 단순 ‘포토존’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어떤 랜드마크는 살아남는가?

세계적 랜드마크에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교통 인프라이자 도시를 대표하는 미학적 구조물로 손꼽힌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이자 이민의 기억이며, 파리의 에펠탑은 근대 기술과 파리라는 도시의 자존심을 말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르네상스 예술의 정수이자 가톨릭 교회의 권위 상징이고,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위엄과 신비를 품고 있다.


또, 런던 타워브리지는 단순한 교량을 넘어 영국 산업혁명의 기술력과 런던의 상징으로 남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건설 중이지만, 종교와 예술, 건축의 정점으로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신앙과 도시의 풍경이 하나 된 세계적 상징이다.


이러한 구조물은 단순히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다. 그 안에 시대, 종교, 문화, 예술, 기술이 결합되어 있으며, 수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거대함보다 진정성

미국과 유럽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보호하기 위해 조례와 법률까지 동원한다. 뉴욕은 개발권 양도제를 도입해 랜드마크 지정으로 침해되는 사유 재산권을 보상하고 있으며, 파리는 에펠탑 중심의 조망권을 보호하기 위해 7층 이상 건물을 금지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는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높은 건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문화적 정체성과 도시의 품격은 그렇게 지켜진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 지자체는 어떠한가? 쉽게 짓고 쉽게 방치하고 쉽게 부순다. 어딜 가도 똑같이 보이는 건축물뿐이다. 근현대 건축은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기도 전에 철거된다.


랜드마크는 단지 높은 탑이나 넓은 광장이 아닌 그 안에 깃든 시간, 사람, 기억이 이어진 역사와 문화를 담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해도 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