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가 AI를 대하는 자세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존재다. 비서이자 동료, 때로는 전문가이자 반대편 토론자,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연구원처럼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나는 AI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편리함이 커질수록 윤리적 불안도 깊어진다. AI가 제안하는 문장과 해석을 바라보며, “형식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것이 과연 진짜 기자의 글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최한 부산·울산·경남 지역신문 세미나가 지난 4일 부산 해운대센트럴호텔에서 열렸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에 포함된 지역신문의 대표들과 기자들이 모여 현장의 진솔한 의견을 나눴다.
전문위원의 발제는 가볍지 않았다. 신문산업이 축소하는 상황에서 지역신문 기금사업의 운영 실태를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여러 대표가 제기한 데이터 저장 문제는 뼈아팠다. 빅카인즈라는 뉴스 데이터베이스에는 중앙 언론사들의 기사는 차곡차곡 쌓이지만, 지역 주간지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정보를 알고 신청해야 하는데 대부분 종사자들은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 기록조차 데이터에서 소외되는 셈이다.
이외에도 인턴 제도가 2년으로 제한돼 작은 신문사에서는 인력이 안정화되기도 전에 떠나야 한다는 점, 기자 외 다른 직군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현실, 공공 광고 의존이 독립성을 갉아먹는 문제까지. 그간 눌러왔던 하소연들이 터져 나왔다.
AI와 기자 윤리
이날 세미나의 주요 목적인 디지털과 AI. 나도 발언을 했다. AI 도구를 활용하며 느끼고 고민한 내용을 풀어냈다.
“기사 제목을 뽑거나 회의록을 정리할 때 분명 도움이 됩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은 지역 기자들에게는 시간을 줄여주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부작용도 덧붙였다. “AI는 없는 사실을 사실처럼 지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각(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현상인데, 이게 기사로 나가면 왜곡은 물론 완전히 거짓된 정보가 기사로 나갈 수 있습니다. 윤리적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쓰는 건 위험합니다.”
그리고 “AI는 결국 도구일 뿐입니다. 카메라나 컴퓨터처럼요. 문제는 기자가 어디까지 책임을 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사를 대신 쓰는 AI
이러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AI를 사용하고 있고, 동시에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데 AI는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환각보다도 심각한 건, AI가 기자를 대신해 기사를 쓴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기자는 스스로 글을 써야 한다. 취재와 분석, 해설, 대안 제시는 기자의 본질적 역할이다. 맞춤법 교정과 문장 정리는 보조일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던 기사를 만들어내는 행위까지 AI에 맡긴다면 기자의 정체성과 윤리적 책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기자들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바로 ‘보도자료’다. 공공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기명만 바꿔서 자신의 기사로 둔갑하는 일은 오래됐기 때문이다.
체감상 사람이 20%, 나머지 80%는 AI가 대신할 수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물론 아직 AI가 형식을 갖춘 완결된 기사는 쓸 수 있지만, 완벽한 기사를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속도와 범위 면에서 이미 기자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고,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AI 표기의 한계
일각에서는 “AI가 쓴 기사라면 캡션으로 명시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다. 독자는 여전히 신문사의 이름을 바탕으로 넓게는 기명을 보고 기사를 신뢰한다. 기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는 건 AI가 아니라 기자와 신문사다.
‘해당 기사는 AI가 작성했습니다’라는 문구는 투명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기자 윤리의 핵심인 사실 확인·책임·가치 판단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기자의 검수와 최종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낼 뿐이다.
종이신문의 역할과 편집 지원
모두가 디지털만 얘기하는 사이, 종이신문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종이, 활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매체다. 10~20대 사이에서 활자를 다시 매력적으로 소비하는 ‘텍스트힙’ 문화가 확산한 것도 그 증거다. 물론 이마저도 예쁘게 보이는 책이나 관련 소품, 그러한 책을 보는 ‘나’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독자가 최소 ‘한 번쯤 집어보고 싶은 신문’을 만들려면 편집과 디자인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회의에서 종이신문의 중요성과 함께 편집기자의 역할과 복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이신문을 지탱하는 힘은 단순한 인쇄가 아니라, 그 속에서 매력을 불어넣는 편집기자의 창의성과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라인이 대세라 해도, 신문이라는 매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잃어간다는 데 있다. 신문은 부족해진 ‘생각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AI 필수 시대
AI는 머지않아 스마트폰처럼 생활의 필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지역신문 기자로서 나는 어떤 기준과 윤리로 AI를 받아들이고, 몰려드는 업무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나만 거부한다고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건 과도기 속에서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하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