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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형준 Sep 17. 2021

두 개의 다른 팀

99 vs  1%

두 개의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다.

한 팀의 리더는 권위적, 정보 독점, 공유하지 않음 과 같은 키워드로 설명된다.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 사람들에 게마저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가장 큰 단점은 소통력 부재라 느낀다.  


회의를 해보면 팀 운영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데, 내가 첫 회의 때 마주한 광경은 바로 팀원과 리더가 감정적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아이디어를 위해 격하게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는 강압하고 팀원은 저항하는 현장이었다. 여기서 리더가 '그럼 어떤 논리로 해야 합당한가요?'라고 물어온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늘 다음과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도 해야죠!" 

 

그래서 이 회의를 다녀오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Decision making이 지칠 정도로 느리고, 작은 문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리더의 숨은 의도를 알아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 의도를 제발 입 밖으로 꺼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여기를 99% 팀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또 한 팀의 리더는 디테일 중시, 소통, 다양성 존중과 같은 키워드로 설명된다. 비교적 팀원들의 의견 교환이 자유롭고 존중받는 편이다. 회의에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잘 드라이브하기에 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의사결정의 속도가 유지된다. 이 팀 회의도 디테일한 부분에 집중하는 날에는 진이 빠진다. 하지만 이렇게 파고들지언정 먼저 설명한 팀과 달리 의사결정이 지지부진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감정싸움을 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회의를 다녀오면 대개 나는 리프레쉬된다. 왜냐하면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류되기 때문에 머릿속이 정리되고, 현장에서 이뤄지는 빠른 결정을 통해 다음 할 일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다가 막히는 부분은 회의에서 의견을 구하고, 그렇게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곳은 1% 팀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야 어디나 있는 일 아니야? 새삼스럽게...


라고 말할 사람이 많겠지만, 이 팀들이 다름 아닌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99% 팀의 여정은 그리 순조롭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진창길만 골라 다니고 있었다. 쉬운 길도 어렵게 가고 있었다. 그래서 팀원들은 제발 쉬운 길을 가라고 끊임없이 리더를 재촉하고 있었다.


안 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다고 했던가. 99% 팀에서 잦은 질문이나 반대의견은 공격으로 간주되었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이니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러 번 할 말을 다 하다 보면 말 그대로 보복을 당하게 된다(정말로 마동석의 진실의 방 같은 느낌으로 감정적인 비난을 당하게 된다). 효율성을 강조하면 효율성의 가치가 부정당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다보면 연구를 방해하는 자로 낙인이 찍힌다. 나도 두 번의 과제 방출 통보를 받고서야 자유를 얻었으니 할 말 다했다.


나는 연구의 허점을 비교적 철저하게 분석했고, 오류를 피하기 위해 다른 팀원들과도 의견을 교류했으며, 그 결과를 리더에게 말해주었다. 


'이 연구는 정확한 가설이 없습니다'

'이 연구는 이런 부분이 아직 미설정되어 있어 누가 보기에도 허술한 디자인입니다' 

'이 부분은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같은 식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논리가 아닌 "가설이 있죠 왜 없어요!" 라던지 "말이 되지 왜 안돼요!" 같은 대답뿐이었다.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게 뭔지' 물어보면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문에 늘 대화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1% 팀 리더도 의견을 고수할 때가 있지만, 팀원들이 직접 반대의견을 내놓아도 회의가 잘 진행된다. 여기서는 99% 팀에서 느꼈던 것처럼 '반대의견을 내놓기가 매우 두렵고 눈치 보이지' 않았다. 99% 팀 리더가 어떤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놔도 상관은 없지만, 하나만 짚고 넘어가 볼까? 


99% 팀 책임자는 장기적인 플랜이 거의 없고, 머릿속에 예상 로드맵이나 결과가 없어서 시시때때로 방향이 변경돼 일 진행이 절뚝거리는 반면, 1% 팀 책임자는 머릿속에 예상 로드맵 와 계획이 잡혀 있어서, 그때그때 연구 방향이 변하더라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99% 팀 팀원들은 모두 '내가 공(空)으로 돌아갈 일(삽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불안해했다. 


상식이 없는 팀에서 일한다는 것은 주변의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이 두 팀을 오가다 보면 한쪽의 몰상식이 너무 부각될 때가 있어 현타가 왔다. 따라서 99% 팀 책임자는 '시간'과 '경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99% 팀 연구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타의에 의해 자유를 얻었다. 희망도, 커리어도, 재미도, 보상도 미미하다고 느낀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내 앞에는 새로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자유는 늘 불확실성과 함께 가니까 불안감은 좀 참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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