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특정한 맛에 익숙해지고, 자기 입맛을 선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맛을 평가할 때는 '나만의 입맛'이 기준이 되기에 맛이라는 것의 실체가 궁금하기도 하다.
음식을 먹기만 할 때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만 한 번이라도 타인에게 정성을 가지고 음식을 대접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맛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이다.
대표적인 예를 고수로 들어보자. 고수는 한국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서 먹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고수가 들어간 음식 자체를 먹지 않으려 할 정도다. 국경을 넘어가면 취향 차이는 더 극명해진다. 고수는 동남아뿐 아니라 인접한 중국에서도 요리에 빠지면 아쉬운 향신 채소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이 고수에 대한 거부감이 한국 사람만큼 심하지 않다.
오랜 시간 아내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며 느낀 것은, 정말 입맛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각자가 포인트를 두는 맛의 지점도 단맛부터 싱거운 맛까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 셰프가 '고기의 간을 적당히 맞춰주는 것이 풍미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들 큰 의미가 없다. 그 간의 적당함 또한 각자의 입맛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연 맛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름의 대답을 얻어냈다. 맛이 가진 기억에 의해 취향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대답이었다. 맛이 가진 한 사람의 역사가 그 취향을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맛이 가진 역사가 어떤 건지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경상도 출신 부모님께서 해주신 밥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강한 마늘, 파 등의 향신채소 맛과 짠맛 그리고 대체적으로 강한 풍미를 '맛'으로 알고 자라왔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누적되어 온 내 안의 데이터다. 내 아내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깐수(간쑤 성)와 상해 출신 부모님께서 해주신 밥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향신료에는 매우 익숙하지만, 오히려 심심한 맛으로 재료의 본질이 살아나게 하는 것을 '맛'이라고 알고 자랐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같은 밥을 먹을 때마다, 서로가 '맛은 이래야 해'라고 하는 지향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맛을 보는 찰나의 한 순간에도 각자가 살아온 긴 시간이 축약된 각자의 데이터가 자동 적용된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맛'은 맛이 아닌 것이다. 맛은 곧 각자의 기억이자 역사 데이터의 총합이다.
물론 맛의 역사는 현재 진행 중이며,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다른 맛에 도전한다면, 그리고 서로의 '맛'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맛의 황금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맛은 곧 기억의 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