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이혼을 앞둔 나에게

2019년의 글

by 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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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이후 혼자된 지 959일. 이혼 판결 1년 5일이 된 오늘 나는 토마토 2개를 갈아 석류 홍초를 섞은 쥬스를 홀짝, 마시며 아침을 열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다.


언젠가부터 깊이 잠도 잘자고, 자는 시간이 늦어져도 7시.8시 사이에 눈이 떠지는 부지런함도 생겼어. 계속 잠만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무의식이 자리잡은 거 같기도 하고. 7시 40분쯤 눈을 뜨고 빨래 개고 넣고. 또 돌리고 집안 정리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이제 앉아 생각을 정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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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빈의 소송 끝에 나올 법원의 이혼 판결. 막막하고 두려운 터널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2018년 7월의 너에게, 오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1) 날 오롯이 사랑하는 건 주님 외에 오직 나뿐이야

별거. 소송 중에는 거의 내내 거울을 봐도 피부도 거칠고 눈빛은 멍하고 좀비같이 찌들은 내 모습이 비춰져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떨어트렸어. 분수에 맞지 않는 과한 지출을 해서 나의 외면을 꾸미고 오롯이 자기관리라는 명목으로 껍데기만 치장하다보면 공허함이 생길거야.



그래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다듬어가는 것. 많이 지쳤구나. 수고 많았어. 네 기분은 너무 정당해. 괜찮아. 괜찮아.. 위로하며 거울 속 너와 자주 눈 마주쳐줘. 나의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빛을 발하도록 자주 움직이고 너를 가꾸는 건 너무 중요해.



2) 잘 챙겨 먹고 잘 자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 뭐였는지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지쳐서 끼니를 거르기도 일쑤고. 한 번 먹으면 절제하지 않고 먹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도 할 거야. 소량이라도 조금씩 건강한 끼니를 챙겨먹자. 야채. 과일. 물을 많이 섭취하고 꼭꼭 씹어 먹어.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안락한 조명. 책. 깨끗하고 정돈된 안방에서 내 몸을 눕히자. 폰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해.



3) 주변 정돈을 잘해

당장 필요없는데도 가격이 싸다고 사모으던 습관을 버려. 가지고 있는 옷은 수시로 점검하고 나누거나 버려. 아침의 루틴. 하루의 루틴. 주 몇 회의 루틴을 정돈해서 해야할 정리정돈을 잊지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치울 필요 없이 물건은 제 자리에 두도록 해.



4)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봐

성당. 집. 일. 무한반복이지만 그 안에서도 너는 늘 혼자여야해. 혼자가 익숙한 너이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라도 받아들이고 더욱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도록 해.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예수님께 너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고백하고 기도해. 흔들려도 되니까 자주 울어도 되니까 항상 고요한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더 자주 하고 기도해.



5)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마

너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흘리지마. 아무리 친하다고 믿은 주변인들도 결국은 타인일 뿐이야. 말을 과하게 할 수록 실수가 잦아질 거야. 진정한 대화는 영혼이 통하는, 한 손가락에 드는 사람들과 나눠도 충분해.


가족에게도 나의 모든 세세한 감정 변화를 나눌 필요 없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사고를 전환하도록 해. 그래도 이만큼 버텨냈구나. 쌓아두라는 게 아니야. 너만이 생생히 느끼는 많은 감정들은 차라리 속으로 생각하고 삼키고 넘어가.



6) 더 친절하고 더 다정해지도록 해

애들아빠에게도 더이상 그렇게 잔인하고 냉정하게 굴 필요 없어.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정제된 언어와 표현을 골라 애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무적인 어투로 나누도록 해.


아이들과 부모님께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도록 해. 내 몸이 녹을만큼 피곤하고 지쳤을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고 사랑과 존중을 표현해야하는데 가끔 너는 너무 함부로 너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딸들과 부모님이 상처를 많이 받으셨을테지.



7) 너무 쉽게 설레이지마

소송 중에 생기는 내가 갖거나 받는 이성의 관심은 스치는 한 때일 뿐이야. 몰입되지도 과대해석하지도 의미부여도 하지 말아. 너의 정신이 온전히 한 사람에게 향할 수 있을 때가 올거야. 너의 정신이 오롯이 너 자신을 위해 잘 정비된 후에야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고 겁먹지 않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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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 대형 카페에 가입한 이후 1차목표가 이성만나기가 아니었던 나는 늘 글로써 감정을 풀어내고 해소하고 치유하는 경험을 자주 해온 편이다. 2차목표는 내 사람들 찾기. 이건 목표치에 근접한 것 같다. 나의 글을 걸러읽는 사람들/ 찾아읽는 사람들이 나눠지길 바라며 꾸준히 내 성향과 색깔이 나오도록 글을 쓰는 중이다. 그러면서 나의 빛을 알아본 사람이 내게 다가오면 너무 화들짝 놀라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확장될 때까지 오래 지켜보자는 신념도 생겼다. 지금은 그가 자발적으로 무기한, 동굴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조차도 모두 이해하기로 한다. 나는, 어디서나 뱉을 수 없는 이혼 과정과 후의 감정들을 이 공간을 통한 글쓰기로 치유하고 소통하는 중일 뿐이다.


(돌싱과 싱글 가입자가 몇 십만명이 되는 대형 카페에 남겼던 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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