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글: 치유글쓰기 30일>
내 꿈에 대해서 써야겠다. 일단 요즘은 글쓰기의 습관이 불식되어 버렸다. 책은 여전히 손에서 놓고 있지 않은데 글쓰기가 왠지 부담스러워졌다. 2021년 초반 치유글쓰기 30일 동안 카톡방에서 매일 서로의 글을 올리고 읽고 피드백을 종종 나누곤 했던 일상이 그리워질 정도이다. 그 이후 3,4일을 혼자 글을 쓰다가 완전 손을 놓고 있다. 실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배고프면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프리랜서의 편안해진 일상 속에서 나의 경제적 여유는 내가 누리는 자유에 반비례하여 하락하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해보기로 마음먹은 글쓰기를 일상에서 고스란히 빼놓고 있었으니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꿈에 대해 쓰기로 해놓고 그동안 글쓰기를 뒷전으로 해 놓은 나의 일상에 대한 푸념이 길어졌다. 이것도 내 삶의 한 부분이라 솔직하게 고백하는 식으로 꺼내놓아 본다. 나는 꿈을 자주 꾸고 그 꿈들이 잠에서 깨어나서도 보통은 생생히 기억이 나는 편이다. 대부분은 일상에 관련된 사람들,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과 내가 나오고 아주 가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신나고 어쩐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 속에도 내가 있다.
어젯밤의 꿈은 내가 고2를 올라가는 상황이 되었고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수학을 완전히 놓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하게 되어 고1의 수학부터 다시 풀어보기로 하자. 인강도 듣고 모르면 알 때까지, 중학교의 기초 수학이 나와서 막히면 그 문제는 문제풀이 과정을 외워버릴 때까지 쓰고 또 쓰자 라는 다짐을 한 것 같다. 꿈에는 내가 그다지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친구 한 명이 나왔고 의아했다.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부류였던 그 친구는 늘 속을 알 듯 모를 듯 자신을 과장하다가 은폐하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자기의 집이라고 편하게 쉬라고 하면서 내 놓아준 집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이런 저런 간섭을 하는 것까지가 기억난다.
그리고 고2인 나는 그 나이에 우리 부모님과 집에서 말 그대로 숨바꼭질도 했었고 애들 아빠도 꿈에 나왔고 아이들과 애들 아빠의 좋은 애착이 꿈에서도 그대로 발현되었다. 꿈에서도 우리는 헤어진 상태로 나왔는데 아이들이 무언가의 이유로 부끄러워하다가 내가 가운데 있는데 나를 지나쳐서 아빠에게 안기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귀여워 보였는데 나중에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또 숨바꼭질 하던 부모님이 정말로 열성을 다해 우리와 놀아주셨는데 (우리라는 건 나와 내 쌍둥이 동생 우리 둘을 말한다) 엄마는 어느 덧 바쁘게 치장을 하고 저 멀리 경기도인지 어디에 볼 일을 보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이래저래 시간과 나의 현실 신분이 중첩되는 가운데 나는 또 어느 샌가 여군이 되어 훈련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훈련을 받으려고 모인 여자 넷의 팀에서 서로 먹을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모습 속에 내가 있었다.
큰 양푼 냄비 – 거의 양동이 수준 – 에 누군가가 국수인지 무언지를 담아 준 음식이었는데 면발은 고동색, 녹색 등이었고 미관상은 썩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덥석 집어넣어 휘휘 젓다가 국수를 꺼내 들어보고 먹을 만한데, 라고 말을 하며 팀원들에게 먹기를 권하였지만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관계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고 자신의 위치와 힘든 상황 등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윙윙~ 내 귓가에 맴돈다는 의식만 할 뿐,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고 참 별스러운 꿈도 다 있지. 내가 왜 고2로, 여군으로 나왔을까. 초고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보고 있다. 꿈에서 내가 고1 수학 문제집 (넘기는 총정리 문제집 같은 거였고 역시나 앞부분 몇 문제만 풀고 팽겨 쳐 놓은 거다) 부터 사서 푼다고 했다고 내가 현실에서 수학 문제집을 사서 풀 일은 요원하겠지만 어쩐지 이루지 못한 도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내가 여군으로 나온 건, 요즘 나의 현실에 씩씩함과 정제된 일상의 부재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목표 지향적이고 열성적으로 살아왔던 내가 요즘은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많고 기본 욕구에 충실하며 프리랜서의 삶에서 남몰래 뱉어내는 작은 한숨들과 한탄만 늘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까.
어쨌든 나는 읽기와 쓰기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올해의 목표를 미약하게나마 지키기 위해 도서관은 2주에 한 번씩 오가면서 새로운 책들을 접하는 재미에 빠져있기는 하다. 한 번 빌려놓고 막강한 압박이 느껴져서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책이 있다.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라는 책인데 이 책은 글쓰기는 곧 삶.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철학. 잘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사람이라 글쓰기의 기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기법을 적절히 배합하여 흡입력이 있는 글을 쓴다는 평가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다.
나는 글쎄, 모르겠다.
내 삶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꺼내놓아야 하고 그건 일기가 아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에세이라는 소설보다 다소 빌려 오기 쉬운 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며 쓰면 될는지 모르겠다. 내가 몇 년 째 소장하고 있는 글쓰기나 출판에 관한 몇 권의 책이 여전히 나에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대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글쓰기에 나를 내맡길 용기가 없는가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다시 한 번 다짐해야겠다. 아침에 눈 뜨면 글을 쓰는 거다. 일어나는 시간도 점차 줄이는 것이다. 잠을 줄여야 한다. 아주 심각하게. 지금은 편안한 일상이 또 박차고 일어나 달릴 때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무늘보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나무늘보가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캥거루처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주머니 속에 내가 필요한 양분을 채우고 나의 아이들과 나의 소중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체력도 길러야겠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고 인증하는 빡독시스템은 여전히 열심히 자생하고 있지만 나는 새벽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 그 행위를 했던 약 20일 간의 시간 동안 습관이 잡히기보다 책을 읽다가 졸기도 하고 책을 읽고 몇 시간 또 자버리는 패턴에 스스로에게 자긍심보다 자괴감을 더 크게 느낀 것 같다. 의지의 문제라고 누군가가 의견을 피력한다면 새벽시간보다 다른 시간에 더욱 효율적인 사람이 나라고 변명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다른 시간을 꾸준하고 생산적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해낸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그럼 문제는 반드시 무언가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것인가로 귀결될 수 있는데 사실 나는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감과 심신의 편안함을 동시에 누리고 싶은 이중, 삼중적인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결론은, 무엇이든 꾸준하게 야금야금 해야 한다는 것이지.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너무 과하게 다 쏟아내지 말고 차근차근 야금야금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즘 지배적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을...
<2018년의 글: 온전한 나를 위한 글쓰기, 온라인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과 고백을 10년 전 일기를 가져와 다듬고 써내려가봅니다. 첫직장에서 사업계획서를 쓰며 글쓰기를 통해 받아야했던 역량의 평가, 글이라는 도구에서 충족감을 얻지 못해 생긴 집단 내 괴리감, 결국은 가장 나다운 매력을 부각시키는 글을 쓸 때서야 가장 편하고 피드백도 좋았어요. 논리적 설득력과 정보전달력은 약해도 나와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쓰기는 즐겨왔습니다. 돌이켜보니 10대에는 주로 손편지, 일기를 많이 썼고 20대에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일기장을 매 년 한권 채우는 재미를 느끼고 싸이월드 다이어리와 책리뷰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았습니다. 무시무시한 9살 연상의 첫사랑은 시를 쓰며 인생과 사랑에 열변을 토하던 사람이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이번 온글은, 부끄럽지만 결국은 글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드러냄으로서 더 나아지고 싶음을 토로하는 고백형 단락글 모음 정도가 되겠네요. (10년 전 일기를 가져와 시점이 안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10년 전의 나
글이라는 게 사람의 의식을 아주 투명하게 반영하지는 않더라도 남기는 것이 남기지 않아 후에 아쉬움을 남기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글의 형식은 어때야 하고 분량은, 횟수는, 의도는 등등.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나는 내가 긁적이는 글 속에서 정체성마저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간, 철저하게 나를 감췄다. 그렇다면 글이라는 걸 누구에게 보일것이고 그동안 나는 어떤 의식으로 매 순간과 매일을 그리고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온거지. 생활의 중심이 '일터'가 되고 있고 '첫 마음으로' 가 실천되지 않아 괴로운 지 반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문자 그대로 나는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에 대한 근원적인 막막함이 밀물이 되어 숨통을 조여온다. 글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해버릴 것 같다. (2009년 기록)
# 2 글쓰기에 대한 소견
글이 단순한 단어의,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나열에 불과하다면 특히 한글은 생명력을 담은 선과 원의 우주적이고 언어학적인 신비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주워담기 식의 남의 글로 내 지식의 표피층을 1mm 씩 늘려 나간다면 어떤 누구도 완벽히 독창적이거나 자기만의 신념이 가득 찬 글은 써 낼 수가 없다. 가설은 가득하고 나의 역량은 한계가 있다. 나는 뭐뭐임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서 잘 해 낸 사람이 되고싶다. 진정으로 글을 잘 쓰는 훈련을 해서 내 의견을 관철하고, 중심을 가지고 있되 따뜻한 감성으로 포용하며 누구라도 편안함을 느끼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글, 더 나은 소통을 위한 깃털처럼 부드럽지만 그 어떤 무기보다 아프게 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란 것을 기억하기.
# 3. 열정결핍
내게 가장 무서운 심리적 압박과 그로 인한 증상은 애정결핍도 의지박약도 아닌 바로 '열정결핍' 이다. 입맛도 없어지고 잠만 늘어나고,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자꾸 혼자 묻게 되고 거기에 대한 답도 못 찾은 체로 눈 뜨면 일하러 오고. 그런 식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처럼 되버린다. 뭘 심하게 귀찮아 하거나 마구 무언가를 증오하지는 않는 대신 열정이 식어버리는 거. 그게 정말 무섭다. 새로운 것을 찾고 아는 것에 대한 열정이 차오르지 않는 것. 그러면서 자꾸 속으로 속으로 침참하려고 하는 그 상태. 열정결핍의 아노미에서 나는 사실 6개월이 넘는 시간, 이렇게 심하게 헤매이고 있다.
열정결핍이 생산하는 것은 의외로 부정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이혼 후의 내가 더 피폐해지지 않도록 나를 연마하는 것. 나의 여생을 보다 의미있게 사는 것.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내 삶의 끝에서 오늘의 이 '열정결핍' 에 대한 뜨거운 증오와 반성을 스스로 축복하게 하는 것. 감정의 끝과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나도 뭔지 모를 지경까지 가지 말고. 하나에 집중하고 그리고 단련하여 다른 하나를 탐색해 나가도록 하자. 나는 호기심이 넘치도록 많으면서 그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열정이 또 결핍 되어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직감이 꽤 강한 편인데. 지금 내 상태를 직감적으로 판단했을 때, 나는 이것을 견디어 내고야 말거라는 것을 안다.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활자가 의미없이 떠다니는 경험을 종종해서 이름붙인 한시적 (자가진단) 난독증이든, 열정결핍이든, 자초적 고립이든. 또 나는 이것을 모두 제대로 받아들이고 견디어 냈을 때 비로소 내가 다른 경지의 기쁨을 맛보게 됨을 직감적으로 안다.
꺼져가는 열정을 살려내는 불쏘시개, 그게 나에게는 요즘 글쓰기이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