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내 마음을 돌아보고 보살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서 괴롭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낳으면서 한국-미국-다시 한국 그리고 잦은 이사, 직장변동 등의 외부적 요인으로 부부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결혼 초, 그러니까 나.. 여기서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던 2013년 즈음, 내게 책 한권을 선물했어요.
<8주, 나를 비우는 시간>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고..." 라 생각하여 온전히 그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위해 나를 비우기로 작정해봤죠.
"8주? 56일? 에이. 3달도 안되네. 해 볼만하겠는데."
당시에는 너무도 생소하던 명상, 그리고 '마음챙김' 이라는 주제였어요. 비우면 다 될 줄 알고 일단 질렀어요. 첫 장부터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보는 책 앞에서, "뭐야 이건, 그 인간이 문제지." 하고 책을 덮어버린 기억.
혁신적으로 8주 변화를 해보려고 다시 책을 펼치면 저 아래에서 부터 나를 옭아매는 분노가 .. 배우자를 향했던 분노가.. 무섭게 치솟아 올랐어요. 그리고 8주는 결국 8달, 8년이 되어 이제야 제 품에서 <마음챙김>이라는 이름을 더더욱 빛내고 있네요.
그때의 나는 아무리 가다듬고 가다듬어도, 다스리고 다스려해도 점점 분노는 그 크기를 키워 결국 나를 잠식시키게 이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올바르게) 존중하지 못해서 아프고 그래서 그를 존중하지 못하여 영원을 약속한 관계는 결국 어마어마한 상흔을 남기고 끝이 나버립니다.
결혼 중에 시작했지만 결국은 그 책읽기를 포기하게 되고 이혼이 정리된 후에서야 부채의식에서 해방이라도 되려는 듯, 조금은 무던하게 펼쳐졌답니다.
그 이후 쭉 결혼생활안에서 극도로 자극받았던 내 안의 분노, 그 이유부터 찾아보고 싶어 이런저런 책에 기웃거려보았어요.
그렇게 애를 쓰며 나아지려하고 치열하게 미워하고 관계를 되돌려 보려하다가 문득, 다 '내려놓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아... 보듬어주지 못해서였어요.
아픈 나를, 아픈 그를, 일을 크게 만들까봐 자꾸 괜찮다고 하던 나를, 그런 나를 건드리고 지치게 한다며 비난하던 그를, 가만두지 못해서였어요..
그토록 들끓었던 내 안의 분노가 사실은 아픔의 크기였다니 조금씩 나도, 그도 가엾게 느껴졌어요.
어느 순간, 뜨겁게.. 끊임없이 흐르던 눈물과 함께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이 관계를 이제는 잘 보내주자.
안으로 밖으로 제 세상이 온통 어두컴컴할 당시 제가 끊임없이 붙잡은 신앙의 빛줄기의 덕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좋은 기운을 수혈받으려 놓지 않았던 책들.. 주로 <<마음, 영혼, 명상, 분노, 자존감, 받아들임>> 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책들 이구요.
1.마크 윌리엄스 <8주, 나를 비우는 시간>
2.타라 브랙 <받아들임>
3.크리스토프 앙드레 <나라서 참 다행이다>
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5.틱낫한 <화, anger>
6.캐롤라인 미스 <영혼을 위한 7가지 단계 치유의 힘>
30대 중후반, 별거와 이혼을 겪어내던 그 고통의 시절, 나와 함께 관통한 이 6권의 책이 나를 고통 다음의 단계인 받아들임이라는 단계로 한 차원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네요.
고백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던 '왜곡된 자기상'이 나를 괴롭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하게 괜찮은 사람, 때로는 너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절하하거나 지나친 자기검열 + 자기포기의 불균형한 조합으로 나를 혹사해온 건 아니었을까요.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나서 이제야, 그렇게 결혼생활을 통채로 저당잡히고 나서야,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용기를 조금 모은 것 같다고. 나를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