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달하게 될 심리적 지향점,
지난 몇년 간 고통에 시달리며 부던히 잡으려고 했던 심적 상태는 바로 '평온함'. 이혼 소송의 한 복판에서 나의 친정 아빠가 해준 말은 바로 "진정한 평화는 폭풍의 눈 속에서 찾을 수 있단다"라는 말. 그 말이 나를 지금껏 버티게 해주었다. 이혼소송을 맡아주던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님은 나의 눈물 어린 지난 일기와 진술서, 이혼 소장 답변서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이혼을 끝까지 하지 않고 버티려던 내게 "결국은 일어날 일이고, 어차피 하게 될 거 같은데. 류안씨를 위해서 하세요 이혼.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감정의 온도차가 심하게 나타나는 것을 감정 기복이 지나치다고 한다면 나는 분명 그런 성향에 속했다. 감정의 고조와 온도가 표정에 드러나서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했던 적도 많았고 그걸 나의 솔직했던 성향이라고 포장했던 기간도 꽤 오래 되었다. 관계는 늘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은 난로처럼, 혹은 고슴도치처럼 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별거와 이혼을 통해, 그리고 이혼 후 몇 번의 썸과 연애를 통해 혹독히 배웠다.
너무 다가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아야 하는데 늘 그 간극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이와는 아무리 멀고 먼 거리와 간극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비슷하게 유지되는 경험을 했거나. 어떤 이와는 멀고 멀어지는 거리만큼 마음이 계속해서 멀어져가고 간극도 벌어져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이 모든 과정 안에서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함, 평온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러니까,
폭풍의 눈 속에서 일희일비하지 말 것.
요새 여러가지로 또 나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집문제. 학업문제. 자격증문제. 업무적인 문제. 인간관계 문제.
문제라 생각하면 한없이 문제투성일 뿐인 일들이다.
한때는 모든 것이 다 고통을 불러오는 것들이라 생각하여 agony, purgatory 같은 절망적인 단어만 자주 떠오르고 했는데.
역시, 부분을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서 바라봐야겠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쨌든 일어나고 있는 일들.
집관련. 학업관련. 자격증관련. 업무관련. 인간관계 관련.
이런 상황들이 펼쳐져 있을 뿐이라는 관점으로 바라 봐야겠다.
결국은 내가 지향하는 지점으로 끊임없이 갈구하며 나아가기 위해서.
Serenity, Tranquility.
언젠가 내 몸 어느 구석에 또 새겨넣고 싶은 문구를 찾고 있는데,
타투 레터링으로 괜찮은 문구를 고민하는 행복한 타이밍.
In the end, I am seeking to stay in serenity.
After all, I reach to swim in the sea of tranqulity.
그렇게 살다보면 도달하게 될 지점.
마음에서 이런 지향점, 이토록 예쁜 단어를 계속 계속 발화시키면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이 시간도, 바로 지금 이 순간 역시도 그 과정이겠지.
그곳에 다다를 날이 언젠가 다가오겠지. 이미 일상에 스며들 듯 다가와 있어 문득 일상 속에서 희미한 미소띄우며 알아차릴 날이 오겠지.
Atarax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