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해결의 기쁨

by 류안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내가 소속된 직장의 업무는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후임이 고생하는 구조이다. 생전 꿈꾸지 않았고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던 행정 업무. 호기심이 있긴 했지만 다만 내 영역은 아니라고 여겼던 대학교 교직원이라는 직업. 교무, 학사, 행정 같은 모든 일처리를 책상에 앉아서 혼자 공문 처리 하는 일이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조직 역시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집합체이기 때문에 소통과 교류가 필수적이다.


나는 23년 10월 30일에 임용이 되어 국립대학교 교직원으로 교육공무원 대우를 받으며 '어공'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친분이 있었던 교수의 추천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내정자를 정해놓는 것이 어느 조직에나 횡행하기 때문에 특혜라던가 그런 개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엄연한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고 면접을 통해 선발된 것이기 때문이고 내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업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임자의 갑작스러운 인사이동(퇴직)으로 인해 인수인계를 말 그대로 번개불에 콩 볶듯이 정신없고 맥락없이 받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롭게 처음부터 혼자 익혀야 했는지 말로 다 못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업무 첫달부터 인수인계서를 쓰기 시작했다. 타고나기를 꼼꼼한 성격이 아니지만 빠트린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틈틈히 메모하며, 할일 목록을 만들어 가며 하나 하나 수행해나가는 기쁨. 그리고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업무적인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갈 때의 기쁨은 가히 적지 않다.


행정업무는 꼼꼼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에게 맞는 직군이라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성격유형검사에서도 J 기능보다 P 기능이 발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미루거나, 즉흥적으로 해결하거나, 닥쳐서 하거나 그런 식의 처리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 때부터 약 3년간 일했던 개인 상담센터에서의 보고서 작성, 업무일지나 회의자료 준비 등은 철저하게 기한 내에 하려고 노력했으며 센터장에게 인정받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건 분명히 타고난 성정이라기 보다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 사람은 성공 경험에 의해 효능감이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 타인의 인정과 자기 노력의 산물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아무리 잘했다고 혼자 만족한들, 타인이 인정할 수 없는 범위이거나 수준이라면? 타인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멀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도 발생한다.


오늘 업무를 보면서, 우리 조직 내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 측면의 중요성을 또 깨달았다. 신뢰가 쌓이면 어렵게 생각되었던 혹은 조율조차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업무가 생각 외로 술술 풀리는 것이다. 물론, 그 신뢰를 쌓기 위해 억지로 애를 쓰거나 부자연스러움을 담아 사람을 대하다보면 자신도 타인도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1년 반 가량, 동료 선생님들께는 인사를 잘하고, 예의를 갖추고, 먼저 도와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내가 손해본다고 생각하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고, 겸손을 다해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려고 애썼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게 신뢰를 주는 행동이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동료 간에 보인 객관적인 업무 태도는 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랬더니, 그간 조율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오늘 오전 생각지도 못하게 쉽게 풀렸다. 동료 선생님의 하소연 섞인 사실 관계 확인과 내가 인수인계 받지 못했던 혹은 묵인했던 우리 부서에서의 업무 처리가 분명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속감이랄까. 사명감이랄까. 내가 있는 동안 해결하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심을 담아 선생님의 말씀에 경청을 했고 해결되면 좋겠다는 진정성 역시 전달하였다. 분명 그 선생님의 협조 없이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었기 때문에 존중을 갖춘 대화와 경청하는 태도, 진정성을 담은 눈빛을 충분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쟁취했다. 해결의 기쁨을. 말로 다 못하게 성취감이 느껴지고 뿌듯하다.

몇 년간 우리 부서에서 어렵게 여겼던 업무적인 부분이었기에 신뢰, 협조, 조율을 통한 해결의 기쁨이란.. 내게 꽤 큰 무게로 다가온다.


내가 모든 부분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사회 조직, 고등교육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행동을 더 다듬게 되고,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그렇게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투철해지고 성실함은 덤으로 생겨가는 것 같다. 나의 임용 기간은 계약때 부터 기간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고 감사히 여겨야 겠다. 남은 기간동안, 거의 소책자에 가까운 인수인계서를 써내려 가면서 최선을 다하고, 조직 내 상사와 동료들과 원만히 지내며, 민원인 응대와 업무 처리에 더 전문성을 갖추고 임해야겠다. 오늘 내게 주어진 업무로 인해 해결의 기쁨을 만끽했으니 글도 술술 써내려져 가고, 긍정적인 시너지가 확실히 일어난다.


자꾸 자꾸 주문을 외워야겠다.


다 잘 될 거야. 다 잘 할거야. 다 잘 풀릴거야. 너는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 너는 충분히 고비고비를 잘 넘겨왔어.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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