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말,
기다리자.
천천히 가자.
심호흡 하고 그렇게.
그 대답은 나중에 하겠다, 라는 말처럼.
조금은 여유를 더 선물하자 나에게.
내게 쉽게 사라질 일 없는 불안이 다시 조금씩 생기고 있다.
사실 마흔 초반까지도 나는 불안이라는 걸 겪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평했었는데
혼자가 된 시간이 오래될 수록,
어떤 관계가 끝나거나 시작되기도 전에 시들수록,
불안이 더 가중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전혀 내 삶의 궤적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던 누군가를 알아가게 되는 상황이
최근 몇 달 지독하게 많이 발생했고 이제는 지칠만도 한 시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성향이 아니라고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사실은 나는 그 단 한사람이 필요하고
시작되면 한없이 끝없이 믿어주고 싶을 뿐이라는 것.
내가 바라는 신뢰, 그만큼을 바라는 것 뿐.
사실은, 생전 모르고 지넀던 누군가를 깊이, 넓게 알아간다는 건
내용물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선물을 풀러보는 기분이다.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연락 패턴과 빈도, 반응과 태도 모두가
내가 예상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영역과 범위에 있다.
그 사람이 누구든.
나는 평생에 걸쳐 심리를 공부하는 사람이고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사람의 심리는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모르겠고
누군가를 교육을 한다는 건 나조차도 교육과 훈련이 되어 있는지
스스로를 계속해서 의심을 하게 되는 걸 보면
겸손으로 치장한 회피로 나를 방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점에,
간절히 내 편을 원하는 이 시기에,
이혼 후 8년 동안
간절히 그 내 편 한명을 바라고 있었던 나이기에 .
새로운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가슴 팍에 부여 않고
언제 풀러야 할 지 모른 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자꾸 한번씩 눈물도, 미소도, 웃음도 나다가
털썩 주저 앉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왜 모르겠는가.
인연은 붙들려 할 수록 도망가고,
될 인연은 가만히 두어도 맺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만남은 인연,
관계는 노력,
이라는 말도 나는 강력히 믿는다.
나는 그리고 그는, 어디쯤에 있을까
노력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부디 같은 것이길.
우리의 마음, 그 결, 그리고 속도가
부디 따뜻하고 비슷하여,
우리의 걸음 걸음이,
마음씀이,
서로에게 불안을, 부담을, 불편함을
일으키지 않기를.
단 한 사람,
오래 기다려온만큼,
잘 알아볼 수 있기를,
아닌 인연이라면 기꺼이 보내줄 수 있기를,
이어질 인연이라면 충분히 기다리고 안아줄 수 있기를,
천천히
익어가도록,
불안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