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치 Jan 17. 2024

Frengers : 겨울이 왔다

by Mew (2003)

겨울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듣고 싶은 음악들도 달라져. 나의 경우 봄에는 가사가 들리는 조용한 음악들을 주로 들어. 날씨가 더워지면 시끄럽고 신나는 음악들도 틀어보다가, 가을이 되면 클래식 음악들도 더러 꺼내는 편이야. 그리고 겨울은 나에게 있어 재즈의 계절이지. 쌀쌀한 바람에 식어간 몸을 덥히는데 재즈만큼 제격인 장르가 있을까? 재즈 없는 겨울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야.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겨울을 대표하는 음반으로는 Mew의 《Frengers》를 꼽을 수 밖에 없어. 


 고등학교 시절이었어. 항상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던 친구의 mp3에 생소한 곡이 있었지. Mew의 〈Snow Brigade〉. 직역하자면 ‘눈의 군대’ 정도가 될 거야. 마침 이 노래를 알게된 때가 겨울이었고, 계절과 어울리는 제목과 곡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어. 그들의 다른 곡들도 궁금했기에, 몇 주간 돈을 아껴 〈Snow Brigade〉가 수록된 앨범 《Frengers》를 구입했지.


 처음 앨범 전체를 끝까지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꽤 복합적이었어. 우선, 음악이 굉장히 좋았지. 복잡한 음악이었지만 어렵지 않았고, 요소가 많았지만 깔끔하게 떨어졌어. 지루하지 않게 48분 가량의 시간이 지나갔지.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어. 앨범 커버를 통해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여자의 시선처럼, 앨범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했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느낌. Mew의 음악을 듣다보면 일본의 사소설들을 읽으면 드는 감정과 비슷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를 바라보는 무덤덤한 관찰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어.

 그 이상함에 사운드도 한 몫을 거들었지, 때때로 터지는 시원한 연주에도 나는 마음 놓고 신나할 수 없었어. 음울한 멜로디를 감싸는, 딜레이가 낀 축축함. 잘 정돈된, 뚜렷한 정위감은 듣는 맛이 참 좋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이 아닌 듯, 거리감이 생겨버려. Mew라는 이름처럼,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이토록 자기방어적인 음악이라니.


 앨범의 라이너노트를 읽으니 《Frengers》라는 제목의 유래는 friends와 strangers를 섞은 자의적 조어라고 했어. 부클릿 안쪽에 써있는 ‘Not Quite Friends But Not Quite Strangers’라는 글귀가 눈에 밟혔지. 제목과, 사진과, 음악이 정확히 밴드가 의도한대로 내게 다가왔어.

 사실, 창작자의 의도대로만 감상해야하는 작품은 재미가 없어. 이는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야. 나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멋대로 비틀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선호해. 만든 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니까. 내가 낳은 아이가 내 마음대로 크지 않는 것처럼. 100% 부모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거야.


 그렇지만 《Frengers》의 음악들이 내내 날카롭기만 한 것은 아니야. 항상 도도하다가도 가끔씩 다리에 꼬리를 대어주는 고양이 같은, 그런 트랙들이 몇 끼어있거든. 그 트랙들 덕분에 다른 수록곡들의 차가움이, 곧 만날 따듯함을 기다리는 과정으로 탈바꿈하기도 해.

 이를테면 〈Symmetry〉 같은 곡. 갑자기 등장하는 여성보컬이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포근한 전개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 〈She Came Home for Christmas〉 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지. 우울과 행복이 순환하는 듯한 곡 구성에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으로, 가히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 브릿지 파트에서 아웃로까지 이어지는 후반부에 가서는 뭐라 표현 못할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달까

 앨범의 끝을 장식하는 〈Comforting Sounds〉를 들을 때면, 나는 자주 울컥하기 직전까지 가. 가장 마지막 곡을 길이가 긴 대곡으로 채우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Comforting Sounds〉 같은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리스너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해. 7분이 넘게 이어지는 기나긴 빌드업이 주는 그 행복감. 《Frengers》를 꺼낼 때면 첫 곡이 시작하기 전 나는 이미 〈Comforting Sounds〉를 들을 것을 기대하지.


 찬바람이 불고 나의 CD 가방에 재즈 음반들이 채워질 즈음이 되면, 아직도 나는 《Frengers》를 찾아. 겨울이 되면 어쩔 수가 없어. 이 앨범은 겨울 그 자체인 음반이니까. 그리고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Mew는 덴마크 밴드였어. 어쩐지 음악에서 눈이 내리는 것 같더라니.


《Frengers》 앨범과 더불어 메이저 2집인 《And The Glass Handed Kites》도 꼭 추천하고 싶다. 음반 전체로서의 유기적인 완성도로 놓고 보자면 2집이 한 수 위이고, 수록곡 개별적인 완성도를 놓고 보자면 《Frengers》가 더 훌륭하다고 본다.


Release Date    April 7, 2003

Recording Date    September, 2001 ~ November, 2002

Recording Location    Cello Studios(Los Angeles, CA), Ridge Farm Studio(England), Sun Studios(Copenhagen, Denmark) Sweet Silence(Copenhagen, Denmark) Third Stone Studio(Los Angeles, CA)

이전 01화 Gorillaz : 20년이 지나도 새로운 음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