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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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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미소

그냥 그렇게 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냥 그렇게 가셨다.
그 흔한 유언 한마디도 없이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퇴근길에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믿기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병원 한 번 제대로 가지 않던 분이었다. 술, 담배를 그렇게도 즐기셨으면서도 이상하게 건강한 몸을 유지하셨다. 그래서 더 어이없고, 더 허망했다. 병원 침대에 오래 누워 계시지도 않았고 그럴 조짐도 없었다. 그저 하루아침에 예고 없이 ‘끝’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특이한 분이었다. 고집도 세고 아집도 있었으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과묵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말들이 위트가 있었고 친구를 좋아하고 게을렀다. 그래서인지 가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정한 말도 소소한 기념일은 기본적으로 생략되곤 했다. 그런 게 결핍이란 걸 알게 된 건 다른 집을 보면서였다.


사랑받고 자랐다 하는 사람들의 집을 보면 다정한 모습의 아버지가 필수조건이었다. 아들처럼 자란 딸로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불만이 가득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원래 이렇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였다. 서서히 변해가는 아버지를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말수도 늘어나고 우리의 일에 관심이 많아졌다. 주말마다 본가에 가는 나를 기다리셨다. 퇴근길에 내가 먹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꼭 두 잔씩 사다 주셨다.


이제와 생각해 보건대 어머니는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이상해하면서 좋아하셨다. 고생 많았던 세월 끝에 잠시나마 평온한 일상이 찾아온 듯했다. 나 역시, 늦게나마 그런 아버지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시간은 길지는 않았다. 너무 늦게 왔다. 우리 모두 젊었을 적 그래왔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테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가족다운 시간을 가졌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그런 순간들이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았다.


아버지가 떠난 지금, 나는 생각을 다잡기로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본인 탓이라며 자책을 하고 계신다. 긴 병상 생활도 없이, 우리 곁을 오래 힘겹게 떠도는 대신 그렇게 퇴근길에 문득 우리를 놓고 간 것이 어쩌면 아버지 나름의 마지막 배려였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 선택은 아버지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떠나면서 더 이상 어머니와 나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남기신 그 짧고 묵직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지금도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예고 없이 그냥 그렇게, 가셨던 그날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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