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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서기 Jun 11. 2019

다들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고 살까

제주 여행 편

가끔 사람들은 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고 살까 궁금했다. 어젯밤 친구 H가 전화로 식장을 잡았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정말 결혼하는 거야? 그 사람이랑? 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ㅣ 우리도 많은 위기를 넘겨왔고 그냥 그 시기가 된 거지.


 그 시기가 대체 뭘까. 30년을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시기라는 걸 모르겠다. 다만 내 주변 친한 친구들이 점점 그 시기에 접어들어 결혼이란 제도에 속해간다는 건 알겠다.


 작년 6월에 H와 친한 Y도 결혼을 했다. Y는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년 연애 끝에 결혼한 케이스다. 고등학교 때부터 Y의 전 남자 친구들을 모두 봤지만 지금의 오빠가 결혼할 만큼 괜찮다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Y의 남자 친구는 소개팅 어플을 여러 번 이용한 전적이 있었다. 그로 인한 다툼을 직접 해결하지 못해 내게 전화해 도움을 청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는 결혼을 했다. 정말 결혼할 거야? 그때도 H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었는데


ㅣ 이 오빠 내가 아니면 누가 데려가겠나 싶더라고


  Y가 속 없이 웃었다. 정말 그런 이유로 결혼을 한단 말이야? 놀라서 되물으면 H도 Y도 아직 뭘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너도 때가 되면 알 거라는 말과 함께. 때, 시기,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두리뭉실한 말이 틀림없었다.

결혼

 어젯밤 H에게 전화 왔을 때 나는『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데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펼치는 책 중 하나였다. 이 책에서 사랑은 결여라고 명명됐다. 내가 너에게서 결여를 발견하고, 너도 나에게서 결여를 발견했을 때 우리 사이엔 어떤 울림이 오며 이것과 함께 사랑이란 감정이 움트게 된다.  고로 나는 너를 사랑해란 말은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라는 뜻이고 함께 있을 때에야 둘은 비로소 그 부족함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결여는 원래부터 없던 거라 더 이상은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떠날 이유가 없다.

 

 너는 나를 떠날 이유가 없다. 나도 너를 떠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두 명의 사람이 상대방의 결여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함께 나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지난겨울 제주 여행에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640 버스를 타고 이호테우 해변으로 가는데 버스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종점인 이호테우 해변에서 기사님이 고개를 돌리며 다 왔습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말했다.


아주머니가 날 빤히 쳐다보셨다. 가지런히 정돈된 백발이 우리 엄마, 아니 그보다 더 연배가 있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텅 빈 해변을 걸었다. 우린 보폭이 비슷했고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냐고 말문을 트게 됐다. 아주머니는 부산에 살고 있는데 딸 애가 출산을 한 덕에 2주 정도 제주에 머물게 됐다고 했다. 어디 사냐고 물으셔서 서울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역시 서울 아가씨 같았다며 박수를 쳤다. 격한 반응에 대학 때부터 서울에 올라왔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ㅣ 우리 딸도 서울에서 식당을 냈어. 연희동에서 카레집을 냈는데 아기자기하고 가게가 얼마나 예뻤는지. 우리 딸이 그런 인테리어 이런 거에 소질 있었거든. 손님도 제법 많았는데.

  연희동이면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상호가 뭐냐고 물었다. 밀물 때인지 파도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넘실거리며 밀려들어왔다. 철썩철썩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주머니는 영 기억이 안 난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서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ㅣ 그렇게 장사에 빠져서 결혼 안 한다 하더니 제주 놈한테 시집갈지 누가 알았겠어


 애지중지 키운 딸이 별 볼일 없는 남자랑 결혼한다 할 때 말렸어야 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발끝까지 닿을 법한 물살을 바라보다 아주머니 사위분이 어떤 분이신데요? 심심찮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제주 바다

 사위는 처음 인사 올 때부터 장발에 수염이 많았다고 했다. 예술하는 사람이라는데 알고 보니 길거리에서 몇 번 기타 공연하는 수준이었다고.


 ㅣ 결혼해서 지금까지도 문화센터나 조그만 가게에서 공연하는 게 다야. 쥐꼬리만큼 돈 벌어서 애를 어떻게 키우겠다고.


 혀를 끌끌 차는데 내가 사위라면 마냥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았다. 사위와 반대로 딸 얘기할 때는 목소리 톤부터 유하게 변했다. 아주머니는 딸이 버젓한 대학교 나와서 장사한다 할 때 많은 걱정이 들었다고 다. 다행히 가게가 잘 자리 잡았는데 그때쯤에 이상한 놈한테 코를 꿰여서 딸이 제주도로 내려와 버렸다. 처음 보는 내게 울분을 토해내는데 난 꿀 먹은 벙어리마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새끼지만 아직도 속을 모르겠다 말할 땐 문득 우리 엄마가 겹쳐졌다.


ㅣ 그렇게 여행이나 다니고 언제 돈 모아서 시집갈래. 내 새끼지만 아직도 속을 모르겠다 정말.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귀에 딱지 붙을 정도로 듣던 말이 파도 소리만큼이나 생생하게 맴돌았다. 여행 좀 그만 다니라는 엄마 말에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에서 귀를 떼곤 했다. 아주머니를 보다 보니  엄마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걷는 내내 핸드폰 전원을 계속 눌렀다 말았다 손을 가만 내버려두지 못했다. 누군가 연락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디 연락 올 곳이 있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멋쩍게 웃었다.

ㅣ딸애가 지 서방이랑 얘기할 거 있다 해서 잠깐 나왔는데 내가 제주도를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아니 바람 쐬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아까 버스에서 날 빤히 쳐다봤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딸애가 사위와 얘기할 거 있다는 말을 할 땐 미간을 크게 찌푸리는 게 아무래도 부부싸움인 것 같았다.


 바닷바람이 꽤 쌀쌀했다. 패딩을 바짝 여몄지만 얼굴이랑 코끝이 에일 듯 아팠다. 양볼은 이미 소주 한잔 한 것 마냥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 냉동고에서 갓 꺼낸 얼음 만진 것 마냥 얼얼한 게 제주도가 괜히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 아니구나 싶었다. 우린 이호테우 해변의 상징, 목마 모양 등대까지 갔다가 금방 다시 돌아 나왔다. 둘 다 코를 훌쩍이는 게 더 있다간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처음 탔던 버스 정류장이 보일 때쯤 아주머니가  갑자기 덥석 손을 잡았다.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며 잡았는데  손바닥에서부터 자글자글한 주름이 느껴졌다. 모질고 매섭게 부는 바람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난 손이었다. 나는 가만히 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도 핸드폰 전원을 눌렀다 껐다 하는 아주머니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바닷가 인근 카페로 갔다. 비수기라 그런지 줄지어 선 가게마다 손님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들어간 카페도 한적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카드를 냈다. 내가 오자 그랬으니깐 내가 살게라고 말하는데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극구 만류했는데도 아주머니는 카드를 넣지 않으셨다.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가 오고 가고 급기야 주문을 받던 카페 사장님이 끼어들었다.


ㅣ 고부간에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며느님 맞으시죠?


  순간 당황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아주머니 카드를 잡고 있던 손 또한 놓아버렸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힘껏 저으니 사장님이 놀란 얼굴로 실수했냐 말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크게 웃었다. 그러고선 재빠르게 카드를 내밀며 서울에 사는 아가씨인데 여기서 우연히 만났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카드를 받으며 아 정말요? 날 보며 되묻는데 표정이 좋아지진 않았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계산은 아주머니가 하고 힘 없이 자리에 앉게 됐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바깥바람소리가 위잉, 위잉 세차게 창을 때렸다. 금방 커피를 내온 사장님이 우리 사이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일이 극히 드문데 아주 보기 좋다며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고선 서비스라며 과자가 담긴 디저트 그릇을 쓰윽 내밀었다.


ㅣ 사실 저도 일산에 살다가 여기 내려와서 카페 연지 얼마 안 됐어요.  


 자연스럽게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는데  합석이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주머니는 일산 사는 분이었냐며 반색하며 호응했다. 우리 딸이랑 그 근처 아울렛에 갔었다고 세상 밝게 미소 지었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 아주머니의 표정은 참 밝다. 


 금방이라도 태풍이 칠 것 같은 흐린 제주 하늘 아래, 조그마한 오션뷰 카페에 앉은 우리 셋. 이상한 조합이었지만 얘기는 도란도란 잘 이어졌다. 한창 자기 얘기를 하던 사장님은 두 분 다 어떻게 제주에 혼자 올 생각을 했냐 물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혼자 왔는데 혼자가 아니지 않냐. 두 분과 눈이 마주치고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상황이 제법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남자 친구 없냐는 질문도 나왔다. 요즘엔 어딜 가든 빼먹지 않고 나오는 말이었다.
  
ㅣ 소개팅을 열 번 넘게 한 것 같은데 마음이 가지 않았나 봐요. 운동하고 일하면서 돈 벌고, 친구들이랑 밥 먹고 술 마시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그런 시간들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내 대답의 처음 시작은 당찼는데 끝으로 갈수록 말이 흐려졌다. 정말 충분한 건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서였다.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 돈을 모아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집을 사는 일.. 이런 것들이 와 닿아야 할 나이인아무래도 도통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ㅣ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다 그렇지. 우리 딸도 예전엔 혼자 산다 그랬었어. 다 때 되면 제 짝 찾아갈 거야.


 나는 그냥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4년째 혼자여서 이제 이런 말도 너무 익숙했기에 가타부타 대답할 말도 없었다.


 예전에 엄마도 이런 비슷한 말을 했었다. 언제까지 혼자 살 수 있겠냐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ㅣ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나만큼이나 결여를 안고 있어야 한다고.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아. 엄마도 그렇잖아. 아빠랑 틈만 나면 싸우는데 그래도 네 아빠 그런 면은 또 좋아. 그래서 엄마 이런 거 보완해주잖니 이렇게 말하니까.

 그때 엄마는 너 잘났다 도대체 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 쉬었다. 우리 딸은 어려서부터 너무 빨리 나이 들어버린 것 같다고 염려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가 뭐라 하든 난 그게 참 궁금했다. 모든 면이 완벽할 순 없겠지만 그래 이런 면은 좋아, 이런 면이 있으니까 나머진 이해해줄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긴 할까.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흘러갔다. 서로가 살아온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바깥은 벌써 저녁이 됐고 어둠이 내려오기 전에 이제 일어나야겠다며 아주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사장님은 아쉬운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좋은 여행 하라며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 길, 버스정류장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발신번호 딸이었다. 아주머니는 벨이 세 번도 울리기도 전에 냉큼 받았다.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 어디 갔냐는 소리가 크게 삐져나왔다. 하이톤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아주머니는 내 눈치를 보며 어, 금방 갈게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도 입은 웃고 있었다.


ㅣ 박 서방이 갈비 사놨다고? 갈비 좋아하는 거 또 어떻게 알고. 그래그래. 금방 갈게.


 다행히도 따님과 사위분이 별문제 없이 화해한 것 같았다. 전화가 한창 이어지는데 아주머니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응 서울 아가씨 만났다니까. 너 살던 동네. 버스 문이 열렸는데도 딸에게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주머니 손을 잡아 버스에 태워 보냈다.  버스가 출발했다. 얼마나 갔을까. 통화가 끝났는지 저만치서 아주머니가 창문을 연채 고맙다고 팔을 연신 흔들었다. 버스가 점이 되어 사라져 갔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홀가분하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왜였을까.
 
 내가 타야 할 버스 대기 시간은 5분 남짓 남아있었다. 넋 놓고 전광판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거장 같은 게 아닐까. 결혼도 아이 키우기도.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의 엄마가 돼도 인생은 완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아주머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느 정거장까지 와 있는 걸까. 저만치서 달려오는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이 불나방처럼 환하게 날아들었다. 환한 빛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앞으로 가는 길에 함께 걸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그렇게 여러 번 말할 땐 듣는 시늉만 하던 결혼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상상도 하게 됐다. 혼자는 아무래도 외롭잖아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니면 난데없이 찾아온 동행이 남기고 간 헛헛함 때문이었을까.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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