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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23. 2019

뭐가 되든 되겠지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하는 것

잘 지내냐는 세글자는 안부를 묻기에 충분한 말이다.


 l 응, 나 지금 러시아야. 곧 캐나다 갈 것 같아.

 

질문에 답이 오면 다시 또 질문할 거리가 생겨났다.

 

l 캐나다는 왜? 여행으로?

l 아니 살러.


나로서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만나자하는 주의다. 시간과 장소를 잡은 후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여자 친구와 캐나다를 같이 가는 걸까. 캐나다 영주권이 없을 텐데 갑자기 왜 가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 내 주변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이 그이기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라오스 여행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오빠였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퇴사할까 말까 고민만 하던 사람이 얼마 안가 진짜 퇴사를 하고 동남아 일주,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제주도 한 달 살기, 산티아고 순례길, 러시아 여행을 모두 해내며 진성 여행자가 될 줄 그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거기다 이제 이민을 간다하지 않은가. 영 신출귀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촌

우린 광복절에 서촌에서 만났다. 서울 전역이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은 집회 나온 어르신들로 북적거렸다. 비좁은 거리엔 <문재인 퇴진> 고딕체의 빨간 글씨 팻말들이 곳곳에 보였다. 한 손엔 팻말을 들고 허리춤에 힙색을 맨 할아버지가 앞쪽에서 경보를 하며 다가왔는데 그 모습이 흡사 투우 현장을 방불케 했다.


소처럼 돌진해온 할아버지는 피할 겨를도 없이 어깨를 치고 갔다. 당연히 미안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몸이 밀려 물 웅덩이를 밟았는데 운동화 앞코가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흙탕물이 튈 때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때마침 집회에서 연주하는 북과 꽹과리 소리가 신명 나게 울려 퍼져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기괴한 상황이 연출됐다.


경복궁 역을 지나 서촌 골목으로 들어서자 놀란 마음이 그나마 진정됐다. 매스컴에서 맛집이라고 극찬한 영국식 빵집에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빵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달달한 향에 비로소 온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투박한 네모 모양으로 잘린 밤색 브라우니와 큼지막한 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다. 한입만 먹어도 입안이 설탕으로 가득 찰 것 같은 디저트들은 혀에 닿자마자 피로를 녹여주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앞에 앉은 오빠는 네모난 브라우니를 조각조각 분해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ㅣ 유학 가는 거야. 캐나다에서 대학교 다니고 영주권 따려고. 한국에서는 도저히 일하고 싶지 않아.


창밖으로 보이는 기와지붕을 타고 빗물이 하염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나가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오빠는 천천히 포크를 떨구었다. 그 후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빠져나왔다. 제과제빵.


나는 제과 제빵을 배워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처마 끝에선 흘러내리던 빗방울이 힘없이 늘어지다 툭 하고 떨어졌다. 빗방울만큼이나 오빠의 어깨도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ㅣ 제과제빵이 입학할 때 영어 레벨이 낮아. 대학 수업 영어로 들을 자신도 없고 몸 쓰는 것 하려다 보니 제과제빵이지 뭐.


자신 없는 모습에 한소리를 하려다 그만 말을 삼키고 말았다. 궁금증이 일었다. 왜 하필이면 캐나다인지. 생판 모르는 제과제빵을 업으로 삼으려 할 만큼 한국에서 살기 싫은 이유가 무엇인지.


ㅣ 너 알고 있나? 우리 아버지 회사 하시거든.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 회사. 퇴사하고 나와서 그 일 도와드렸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갑질이 너무 심해 한국은.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표정만으로도 이미 질려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ㅣ 우리 회사도 완전 을은 아니거든? 대기업에서 수주받은 걸 다시 하청 주는 회사인데 어떻게든 일감 따내려고 단가를 최소로 맞추는 거야. 그러다 보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되는 거고.


오빠는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쨍하고 유리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덩달아 톤도 높아졌다.


 ㅣ 그 과정에서 대기업은 우리한테 갑질 하고 우리는 또 하청 주는 회사한테 갑질 하고. 아버지는 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는데 난 도저히 모르겠어. 이럴 거면 애초에 전에 다니던 회사도 안 그만뒀지


목이 탄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고 쇄골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가 컵에 닿을락 말락 흩날렸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흰색 박스티, 동남아 어디에서나 입을 법한 폭이 넓은 린넨 바지, 손에 낀 여러 개의 판도라 반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도무지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술가, 아니면 집시 여행자라고 밖에 보기 어려운 오빠가 갑을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건 영 생경스럽다 생각하며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놓았다.


 ㅣ 그럼 언니는 어떡해? 기다려주는 거야, 아니면 같이 가는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빠에겐 3년 넘게 사귄 연상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얘기를 자주 들었었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오빠처럼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른스럽고 배려 있는 사람 등등 너무 자주 들어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 내가 먼저 언니 얘기를 꺼내는데 늘 부담이 없었다.  


 ㅣ  여자 친구랑 같이 가. 그런데 네가 아는 그 사람 아니고 치앙마이에서 만났어.


하마터면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내가 어버버 하자 오빠가 먼저 선제 방어를 시작했다. 내가 죽일 놈이지.


다소 과장된 너스레였다. 그러더니 그동안의 연애사를 들려주겠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ㅣ 동남아 일주 끝내고 치앙마이에 한 달 살러 갔었어. 한국인이 너무 그리워서 한인 게하를 한 달 통으로 예약했거든. 거기서 지금 여자 친구를 만난 거야.


내가 어이없어하자 앞에 있던 브라우니를 크게 잘라 입안에 털어 넣으며  우물거렸다. 그러고서 뭘 모른다는 듯이 대꾸했는데


 ㅣ너 치앙마이 안 가봤지? 거기 사랑의 도시야. 나도 처음엔 여행 뽕인가 싶었거든? 돌아와서 제주도도 같이 가고 순례길도 같이 걷다 보니  마음에 확신이 섰어. 우린 성향도 잘 맞고 그냥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아


오빠의 얘기가 썩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언니는 어떡하냐. 내가 조용히 읊조리자 오빠는 이내 풀이 죽었다.


 ㅣ 그 사람도 잘 살아. 나는 안 보는데 친구들이 인스타 보니깐 잘 산다고 하더라고.


이상하게 언니의 변호인도 아닌데 늘 여자 입장에서 울컥하고 화내는 건 나였다. 아마 늘 밖으로만 돌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찾던 엄마가 겹쳐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내 친구는 오빠였는데 말이다.


 ㅣ 그래도 잘 맞나 보네. 여행도 좋아하고 유학도 같이 가는 거면.


어찌 됐든 나는 오빠의 지인이니까 이 얘기는 그만 하는 게 맞겠다 여기며 화제를 돌렸다.


 ㅣ 같이 있으면 편해. 떨리기보단 편하게 좋은 것 같아.


상기된 얼굴로 안 그랬다면 그렇게 오래 함께 여행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세계 여행자


 ㅣ 난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 여자 친구한테 말했더니 그럼 같이 나가 살자 하더라고. 그래서 캐나다로 가는 거야. 사람들 많이 가는데도 아니고 캘거리로 가. 여자 친구가 워홀로 1년 살아본 데라서.


 빗방울의 세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폭풍 같은 생존 보고도 어느새 끝물에 다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남은 브라우니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 오빠를 바라보았다.


8개월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인상은 훨씬 더 유하고 안정돼보였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가 여전히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퇴사한 후에도, 헤어진 후에도 이 사람은 왜 갈수록 안정돼 보이는 걸까.


 ㅣ 오빠 유튜브 아직 하지?


유튜브 얘기를 꺼내자 금세 반달 모양으로 눈꼬리가 접혔다. 여자 친구가 영상에 관해서라면 센스가 있다며 방방 댔다.  모습이 아무리 봐도 팔불출이었다.


 ㅣ 아직 편집을 안 해서 그렇지 올릴 영상이 산더미야. 거의 다 여자 친구랑 찍은 건데...


그때부터는 줄곧 사랑에 빠진 어느 시인의  헌사였다. 양볼이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진 채 눈을 빛내는데 도무지 내가 말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그 과정이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했다.


 ㅣ 진짜 맞는 사람이 있나 봐. 세상은 넓고.


오빠는 너도 좋은 사람 생길 거야.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대답 없이 혀를 내둘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때쯤 우리는 빵집을 나와 역사 쪽으로 걸어 나갔다. 헤어질 때쯤 오빠에게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퇴사 후에 출간한 여행 에세이였다.


 <안녕, 나야>


제목부터 오빠다운 책이라 받자마자 웃어버렸다. 대충 책을 넘겨보았다. 활자는 적고 사진이 많은 포토북이었다. 책 곳곳에 우리가 만났던 라오스 사진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벌써 라오스를 다녀온지도 일 년 반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는 걸 책을 통해 또다시 깨닫게 됐다. 여행 다니느라 바빴을 텐데 언제 또 책을 써서 출간했을까. 볼 때마다 한걸음 한걸음 성장해 나가는 오빠를 보면 건강한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녕, 나야


 ㅣ 이제 가면 또 언제 보지. 한국 들어오긴 할 거야?


오빤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ㅣ 일단 가보고. 여기 있을 때보다 행복하지 않으면 돌아와야지. 더 나으려고 가는 거니까.


 "거기서 꼭 눌러앉고야 말겠어. 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에 오지 않을 거야." 같은 답변이 나올지 알았다. 이민을 마음먹은 사람들이 보통 투철한 사명감과 목적의식으로 똘똘 뭉쳐 떠나는 반면 오빠는 이번에도 좀 남달랐다. 사실 이런 느슨함이 좋아서 관계를 계속 이어오는 건지도 몰랐다. 좀 느슨해도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의지 하나는 투철한 사람이니까.


보통은 이미 있는 직장을 버릴 자신감, 오래 살던 곳을 떠날 용기를 아무나 갖지 못한다. 거기다가 꿈꾸는 미래를 함께 그릴 사람을 만나기도, 만나서 함께하는 것도 어려운 때에 오빠는 그 많은 걸 모두 다 이루지 않았나. 설렁설렁 사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누구보다 제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 거리에서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린 헤어졌다. 가서 잘 살고 대성하라고 응원했다.


 ㅣ 뭐가 되든 되겠지. 내가 경험해보니깐 사람이 생각하면 그대로 되더라. 그냥 큰 거 안 바라고 소소하게 살고 싶어.


끝까지 잔상이 오래 남는 말을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른 저녁인데도 광화문은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인해 시끄러웠다.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가며 불현듯 우리가 이 나이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았다. 뭐가 나은지 고민하기보다는 이게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어른들처럼  꼰대가 돼버릴까. 투우장의 소처럼 삶을 경기라 생각하고 타인이 정해준 길대로 질주하진 않을까.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세상 헐겁고 느슨한 오빠니까 또 그만의 방식을 찾아가겠지. 그런 느슨함을 동경하는 나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비가 그치고 난 뒤 구름 사이로 해가 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우산에 빗물이 제법 말라 가방에 포개어 넣었다. 광화문 광장을 따라 햇빛이 고르게 내려앉았다. 꽤나 포근한 오후였다. 이곳은 여전히 시위 소리에 덮여 시끄럽고 북적거렸지만 이상하게 그 모든 것들이 아까처럼 익숙하거나 고루해 보이지 않았다. 흙탕물에 앞코가 젖은 운동화도 미리 액땜한 것처럼 느껴졌다. 일상에 변화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와서 그런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걸음에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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