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의미
메일이 왔다.
"그동안 이 회사를 다니며 좋았고 앞으로도 무운을 빕니다."
옆 팀 대리가 경력직으로 온 지 1년 만에 나가는 거였다. 진짜 퇴사할 사람은 티 안 내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난 겨울 떠났던 라오스 여행에서 동행했던 오빠도 길을 걸을 때마다 퇴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마다 난 퉁명스럽게 대꾸했었다.
ㅣ진짜 퇴사할 사람은 이렇게 말도 안 해. 메일 한 통 딱 보내고 나간다고.
멋쩍게 웃으며 자긴 한국 돌아가면 진짜 퇴사할 거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데 괜히 마음이 짠했다.
우리는 라오스의 소도시 루앙프라방에서 탁발을 함께 구경했었다. (*불교의 수행 의식 중 하나로서 스님이 남에게서 음식을 빌어먹는 행위) 이미 너무 상업화된 탁발 의식은 가슴에 와 닿는 게 1도 없었는데, 이곳 스님들에게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아침인지라 대충 음식 받는 시늉만 하며 지나갔다. 스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ㅣ 오빠 난 탁발의식 정말 별로였어. 스님들도 참 의무적으로 일하는 것 같아.
회사에서도 늘 이런 얼굴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의 나도 이런 얼굴이겠지. 씁쓸함만 남긴 탁발 의식이 끝난 이후 오빠가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후에는 한가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ㅣ 나 퇴사. 난 한다면 해. 블루 라군 1도 뛰었잖아.
블루라군 1은 라오스의 대표 관광지이자 관광객들이 11m 높이의 다이빙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다. 오빠는 고소공포증인데도 불구하고 그 높은 곳을 무려 두 번이나 뛰어내렸다. 물론 아주 멋있게 뛴 건 아니었고, 심장 아프다며 다리를 덜덜 떨며 하강했다. 의외로 오빠의 퇴사도 다이빙처럼 순식간에 진행됐다.
같은 고민을 해왔던 동지로서 누구보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얼떨떨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도전했는데 결국 블루 라군 1에서 뛰어내리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ㅣ 앞일을 너무 자세히 계획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내가 보기엔 넌 할 수 있어.
발을 뻗으려다 주춤하고 뛰어내리려다 또 주춤하던게 20분, 나무 아래에서 오빠가 소리쳤다. 그 후로도 계속 머뭇거리다 결국 뛰지 못한 채 올라왔던 나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오기로 다음날 또 갔는데 역시나 한 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뛰면 되는데 결국 마지막 날까지 실패로 끝이 나버렸다. 회사 밖을 나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빤 퇴사 후 카멜레온처럼 바뀌어갔다. 그 더운 라오스에서도 각 잡아가며 옷을 입던 패션 회사 MD가 낡은 벙거지 모자에 큰 박스티, 긴 배낭을 메고 슬리퍼를 찍찍 끌며 나타났다. 백수인데 뭐하며 지내냐 물어보면 도서관에서 여행 책 보고 나왔다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ㅣ 요즘엔 유튜브 공부하고 있어. 세계 일주할 건데 여행만 다니긴 좀 그래서 기록하려고
그 말을 한지 정말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정말로 여행 백수라는 유튜브 채널이 개설됐다. 나는 이제 여행을 가고 싶을 때마다 오빠가 올린 동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구독자가 됐다. 26시간 슬리핑 기차를 타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는 이야기, 폭풍 속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이야기. 채널에 올라오는 여행 동영상을 보다 보면 이 사람이 진짜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어느샌가 세상 부러운 사람으로 탈바꿈됐다.
한낮 온도 30도.
5월인데도 꽤 이르게 찾아온 여름 날씨에 금방이라도 아이스크림처럼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점심시간이었다. 경력직 대리가 퇴사하고 나서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오전 근무를 끝낸 후 점심을 먹고 나왔다. 테헤란로 빌딩 사이로 채 가려지지 않은 햇빛이 직렬로 내려앉고 있었다. 이렇게 쨍하고 날 좋은 날엔 하루 쉬라는 법령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복귀하기 싫은 몸을 애써 회사 쪽으로 돌려세웠다.
횡단보도엔 사람이 많았다. 근처에 근무하는 회사원들은 죄다 이 길로 나온 건지 요리조리 빠져나오는 게 힘들었다. 신호등 반대편에는 선릉이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곳만 푸르른 녹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많았다. 한땐 누군가의 무덤이었을 곳이 이젠 어엿한 도심 속 관광지가 됐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뀔 것 같자 걸음을 빨리 했고 목에 걸린 사원증이 유난히 달랑거렸다. 만약 죽을 때까지 여기서 일하다 죽으면 어쩌지?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서 간담이 서늘해진 건 우스울 일이었다.
사내 엘리베이터는 늘 그렇듯 만원이었고인간 젠가 하듯 그 좁은 곳을 또 끼어 올라탔다. 담배 쩌든 냄새, 찌개 냄새, 반찬 냄새, 온갖 채취로 인해 숨이 막혔다. 엘리베이터가 마지막 층인 8층에 멈췄고 들어가기 전 사원증을 다시 고쳐 멨다. 벌써 4년 하고도 몇 달째. 20대 중후반을 모두 이 회사에서 보냈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면 엑셀에 숫자들이 보이고 그걸 보다 보면 시간은 뚝딱뚝딱 잘도 흘러갔다. 엑셀 칸 같은 파티션 안에서 나란 아이가 답답하든 안 답답하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든 안 갖고 있든 해는 저물고 어느새 퇴근시간은 가까워질 것이 분명했다.
그 해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때쯤 나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즈음 내가 그렇게 퇴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찬찬히 고민하게 됐다. 가령 <모래의 여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왔다.
어느 날 중산층 정도의 농가에서 자란 장남이 훌쩍 집을 나가 버린다. 여자 문제도 아니고 빚 문제도 아닌데 대체 뭐 때문에 집을 나왔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은 그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청년의 가출에 대해 소설 속 A와 B가 얘기를 나누는데 대충 옮겨오자면 아래와 같다.
A: 생각해보면 그 청년의 마음도 이해가 가잖아. 농부란 것은 일해서 땅을 늘리면 일거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 결국 고생에 끝이 없고, 그런 나머지 얻어지는 것은 더욱 고생이 늘어날 것이라는 가능성뿐이야
B: 그래서 그 가문을 이을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A: 그야 미리부터 계획한 일이었으니 일자리 정도는 진작부터 알아봤겠지. 그다음에는 뭐 월급날이 되면 월급을 받았을 테고 일요일에는 옷을 갈아입고 영화나 보러 가고 그랬겠지.
B: 그러고는요?
A: 그런 거 직접 본인한테 물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어?
B: 역시 돈을 모아서 라디오를 샀을까요?
여기서 라디오란 주체가 타인과 소통하는 어떤 통로를 뜻했다. 이 사회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 여기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매개체. 거창하게 말하면 존재 이유를 이 책에선 라디오라고 비유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런 걸 갈망하며 대학 갈 때는 전공을 선택했고 취업할 때는 일하고 싶은 분야와 회사를 선택했다. 그때그때 충분히 고민했고 나름대로 잘한 선택이라 믿었는데 살다 보니 그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오더라.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나는 시도하는 게 두려워진 회사원 A에 불과했다고 남들 하는 대로 튀지 않게 행동하라는 말, 두루두루 좋게 좋게 넘기며 둥글게 살라는 말, 아이디어는 좋지만 리스크가 있으니 다음에 하자는 말만 주야장천 듣다 보면 내 속이 삭막하다 못해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았다.
그렇게 쭉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굳어버려 누군가 내 생각을 물어와도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파도 파도 쏟아지는 모래 구덩이 속에서 이게 운명이려니 단념하고 살아가는 모래의 여자처럼...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성인이 된다는 건 내가 무엇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고 바라볼 건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견지해 나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게 없으면 매달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도 어디 어디의 누구라는 직함도 한 번 쓰다 마는 일회용품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었던 적도 있었다.
특히나 홀로 여행을 하면서부터는 이 태도라는 것에 대해 학습할 기회가 많았는데, 늘 똑같고 조금은 답답한 사각형의 회사 건물 밖에서 난 더 이상 부품이 아니었고 내 이름 앞에 붙은 회사명과 내 이름 뒤에 붙은 직급에 상관없이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여든 살의 일본인 할아버지였으며 어떤 날은 태국인 승무원이었고 어떤 날은 스위스의 기관차 수리공이었던 내가 만난 수많은 타인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길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그건 책으로도 만나볼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업이 될 수 없기에 결국 거대 모래사막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내가 내 시간을 보다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다시 또 선택해야 한다. 이 일을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이냐. 이 일이 내게 중요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냐. 그렇지 않으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대개 가치 실현 쪽에 더 가까웠다. 풀타임 잡을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건 내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그 온기가 다시 또 누군가에게 감동으로 다가가 다른 형태의 따뜻함으로 전해진다면 정말이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긴 세월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줬을 <모래의 여자>를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 건 내가 나만의 라디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였다. 세상 하찮아 보였던 오빠가 단 한 발을 내디뎌 자기 색깔과 자기 시간과 자기 표정을 찾았듯 어쩌면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렇게나 모래 구덩이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모래의 여자>또한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중략)
도주 수단은, 그다음 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결국 난 이 글을 마치는 지금까지도 앞으로 한발을 내밀지 못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뛰어내리지는 못했지만, 조금 더 내 생각들을 써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다듬어진 이후에, 도주 수단은 그러니까 그 다음에 생각해도 무방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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