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은 앞서 말했던 세계여행을 가고 나머지 9억은...제가 좋아하는 신형철이나 패신저(Passenger) 같은 예술가들에게 후원하고 투자하겠습니다."
정말이냐고 재차 질문 받았는데 다시한번 고민해봐도 별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진짜로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예술 작품으로 인해 감동 받고 위로 받을 때였습니다. 음악이 됐든 책이 됐든 그런 예술가들에게 투자하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영향력을 줄 수 있을것 같은데요. 저는 여행을 떠나서 행복해지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그 분들 작품으로 좀 더 행복해지는 거죠."
스스로 맞다고 생각되는 말을 하는데도자꾸만 시선을 피하게 됐다. 정말로돈을 그렇게 써버릴거냐는 찡그린 미간을 마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합격 여부는 인사팀을 거치지 않고 면접장에서 바로 나왔다. 그렇게 나는 음악 회사 마케터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됐다.
돌이켜 보면 그 때도 천상 마케터였는지 모르겠다. 10억이 주어진대도 반짝이는 것들을 더 반짝이게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패신저(Passenger)의 최근 앨범은 수익 전체가 사회를 돕는데 기부되며, 신형철은 타인의 슬픔에 완전히 다다를 수 없겠지만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말했다.
기본적으로 작품이 좋아야겠지만 나는 이렇게 선한 본성을 가진 예술가들을 사랑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리는 것 또한 좋아했다. 정말 좋은 음악, 정말 좋은 책은 드물고 그것들을 알리는 일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짝이는 걸 볼 수 있는 안목과, 그것들을 더 알리고 싶은 욕망은 내가 내 삶을 보다 잘 살아내고자 하는 어떠한 의지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왜 나를 마케팅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지금에 와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수중에 9억이 생긴다면 이제 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투자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이미 단단한 부족을 만들어냈고 나는 또 나만의 부족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은 드물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것을 만들 순 없을 거라고 지레 단정 지을 필요는 없었다. 반짝이는 것들을 늘 우러러보고 동경하면서도 스스로 반짝이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는데 요즘 들어 자주 반성하게 됐다. 이 같은 생각에 확신을 준 책은 『Tribes』였는데 21세기 최고의 마케터라 불리는 세스고딘은 그의 저서 『Tribes』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일에서 리더가 돼라. 나를 알아주는 1,000명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 내가 어디에 있던지 내 작품이 좋다고 입소문 내며 보러 오는 사람들, 내 상품이라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기꺼이 사려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모아서 이들을 위해 일하라. 유명 스타가 되지 않아도 세계적인 부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어디까지나 당신이 부족원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리더라면 말이다. 공통 관심사와 유사 취향으로 똘똘 뭉친 커뮤니티에서 당신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인 크로스핏을 더 오래 즐겨보려고 시작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어느새 본 계정보다 팔로워가 더 많아졌다. 아직 천명은 되지 않았지만 꽤 단단한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음악이 아니더라도 꽤 오래 재밌게 마케팅을 이어갈 수 있구나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회사에서처럼 단기간에 채널을 억지로 키우고자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거나 광고를 돌리지는 않았다. 의미 없는 맞팔이나 선팔 같은 것들도 하지 않았다. 팔로워를 늘려보려고 유사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해시태그로 검색해 전부 다 찾아다니며 나 여기있어요라고 알리지도 않았다. 오직 콘텐츠가 가진 진정성으로 자발적 바이럴이 이뤄져 천명이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알아서 이끌려 오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알아주는 천명이 아닐까? 정말로 세스고딘의 말처럼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좀 궁금했다.
달리는 크린이 @cross__runner
일년 동안 꾸준히 나는 나만의 콘텐츠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봤고, 그로 인해 내 이동반경에서는 도무지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일상이 좀 더 행복해졌다. 덕분에 이걸 좀 더 지속가능하게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당장 의식주를 유지할 돈과 적당한 취미생활을 영위할 비용은 모두 월급에서 나오고 있으니, '그냥' 먹고 사는 건 이미 그 때의 면접을 끝으로 해결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잘' 먹고 살기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먹고 살려면 대기업 계열사 마케터로 만족하면 되겠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그게 만족이 안된다면,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람차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을까 자꾸만 고민하게 된다면 달라져야 했다.
나는 좀 더 열정적이고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는 공동체에서 밥벌이를 이어갈수있지 않을까? 나는 나로 하여금 긍정적인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고 나 또한 그들로 인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받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불안하긴 하지만 요즘 10억에 대한 질문을 다시 떠올릴 때 그 중심이 타인이 아닌 내가 됐다는 것 만으로도 예전보단 다소 발전했다 생각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 나를 마케팅할 것이다. 10억이 없어도 10억이 있다는 마음으로 나를 팔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