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마케팅에서 이름이 가진 의미
얼마 전 인공 눈물을 사러 약국에 갔다가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됐다.
루핑.
H제약회사에서 나온 일회용 인공눈물 제품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손에 집어 들었고 약국을 나오며 '이게 아직까지 살아있었네' 나지막이 읊조리게 됐다.
대학교 때 대외활동으로 제약회사 마케팅을 두 달간 진행했다. 활동이 종료될 때쯤 신제품으로 일회용 인공눈물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게 됐는데 네이밍 미션 또한 함께 주어졌다. 운 좋게 내가 낸 공모안이 발탁됐다.
루핑 : 내 눈에 촉촉함을 앗아가 버린 루팡들과 작별할 시간! 눈물이 핑 돌게 해줄 거예요
지금 보니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그 당시 좋게 봐준 사람들 덕분에 루핑이란 이름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때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소비자로서 다시 루핑을 만나게 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품에 이름을 짓는다는 걸 어떤 걸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자주 봤던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가져와 이름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나는 대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조금 어려운 용어로 말하자면 기표와 기의라는 말로 얘기할 수 있는데 우리가 속한 사회는 대상에 늘 이름을 붙인다. 가령 한국에서 '꽃'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연상한다. 활짝 핀 꽃, 봉오리 진 꽃, 안개꽃, 장미꽃, 프리지아 등등...
그 종류야 각자 다양하겠지만 '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특정한 형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은 동일하다. 이때 내가 말한 '꽃'이라는 이름은 기표이고 꽃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무한히 많은 이미지가 기의다. 그러니 기표란 기의라는 내용물을 담기 위한 일종의 포장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케팅에서도 이 포장이란 게 참 중요하다.
마케터가 팔아야 할 프로덕트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유형의 프로덕트든 무형의 프로덕트든 고객인식 차원에서는 끊임없이 변주시켜야한다. 하나로 고정돼버리면 성장세가 멈춰버리는거니까.
시장에는 우리와 비슷비슷한 제품, 유사 서비스가 존재할 확률이 99.999%다. 세상에 없던 제품 또는 서비스라 하더라도 후발 주자들이 금세 생겨날 것이 자명하다. 딱히 엄청 뛰어나지 않은 프로덕트 스펙, 계속해서 포화되는 시장. 슬프게도 이게 마케터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우리 프로덕트를 고객 구미에 맞게 매력적으로 포장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마케팅이 시작된다.
우선 제품명 또는 서비스명 자체가 우리 프로덕트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포장은 없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아이 셔, 꼬북 칩을 떠올려보자. 이름만 들어도 맛이 어떨지 모양이 어떨지 상상된다. 제품이 맛있으면 '아, 너무 셔. 진짜 이름 같네.' 고객은 포장지를 보며 감탄할 것이다. 반대로 맛이 없으면 '뭐야. 콘칩이나 똑같네. 이게 어디가 꼬북이 모양이라는 거야.' 고객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프로덕트의 질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처럼 이름을 잘 짓는 것 또한 정말로 중요하다. 좋은 걸 더 좋게 할 수도 나쁜 걸 더 나쁘게 할 수도 있는 게 이름이니 말이다.
이름 다음에 중요한 건 이제 그 이름을 각인시키고자 하는 끊임없는 액션이다. 대표적으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를 한번 떠올려보자. NIKE(나이키)는 단어만 놓고 보면 사실 별 뜻이 없는 이름이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보면 그의 친구이자 첫 영업사원이었던 존슨이 꿈에서 나왔다며 ‘NIKE(나이키)’라는 이름을 필 나이트에게 제안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름이기도 했지만 그다지 끌리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JUST DO IT이라는 마케팅 슬로건이 붙으면서 하나의 세계관이 탄생하게 된다. 그냥 일단 계속하고 보는, 끊임없이 전진하는 창업주의 마인드가 이 슬로건에 잘 나타나 있다. JUST DO IT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브랜딩 활동들(온/오프라인 프로모션)이 꾸준히 진행되면 여기에 매료된 고객들이 나이키 매장을 찾는다. 가슴팍에 나이키 로고 스우시가 새겨진 티를 입으면 왠지 모르게 혁신적이고 도전정신 가득한 이미지로 나를 포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키란 이름은 그렇게 다시 탄생된다.
이처럼 비슷비슷한 제품이나 유사 서비스들 사이에서 이름은 단연코 가장 중요한 마케팅 요소다. 브랜드는 그 이름을 각인시킬만한 마케팅 활동들을 계속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제품, 또는 서비스 이름을 듣고 나서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게 긍정적이고 선명하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그러하다면 그 브랜드는 오래가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비단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붙인다는 건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다. 다시 앞에 소개했던 시를 빌려와 말해보자면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브랜드 또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