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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Feb 28. 2021

왜 돈을 내고 마케팅 모임에 갈까? (1)

소셜 살롱 문토. 마케터의 아지트 블루

작년 8월부터 마케팅 모임에 호스트로 나가고 있다. 


마케팅 모임이라고 해서 마케터만 잔뜩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마케팅에 관심 있는 취준생, 스타트업 대표, 영상 디자이너, PM과 같이 다양한 직군이 모인다. 직무만큼이나 산업도 가지각색이다.


패키지, 화장품, 전자기기, 식품, 영화, 클라우드 서비스, 한의학까지... 마치 배스킨라빈스 31 아이스크림 맛처럼 그 양상이 다양하다. 전자기기에서도 컴퓨터와 카메라로 나눠지고, 화장품에서도 기능성 고가 브랜드와 중저가 브랜드 담당자로 갈라진다. 덕분에 격주로 3시간씩 4번이나 모이는데도 모임이 끝날 때마다 아쉽다. 머리가 트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모임


사람이 오래 한 가지 산업에만 종사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생각은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동종업계나 경쟁사 상품, 프로모션을 파악하는 것 이외에도 이종업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변화를 내 것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지 피부로 느껴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마케터라면 스스로를 계속 낯선 환경에 내몰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 모임이 돈 내고 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뉴스레터나 텍스트 콘텐츠를 통해 시장 흐름을 파악하거나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거기 몸 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배우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일이다.


왜, 해외여행도 사전에 블로그에서 열심히 찾다 보면 이미 다 가본 것 같은데 막상 눈으로 마주하면 또 다르지 않은가. 여행이 그러하듯 모임도 만남에 기반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늘 우연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좋든 나쁘든 항상 뭔가를 배운다.


가령 나에겐 이런 경우가 있었다.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첫 번째 모임에서 H님을 만났다. 제지, 패키지 산업에 종사하는 H님은 여러 가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되고 누구나 그림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종이 액자를 판매하고 있다.

 

바로그림 종이액자

이 상품은 액자 안에 넣을 그림도 종이, 액자 프레임도 종이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한 종이를 접기만 하면 액자가 된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단언컨대 액자는 집 분위기를 바꾸는데 가장 구매하기 쉬운 인테리어 용품이다.

*참고 기사: 오늘의 집 이커머스의 시작을 열어준 상품은 액자

 

코로나로 인해 집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홈 퍼니싱 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이건 바로 그림 액자가 시장성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 돈을 취미와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있었다. 취미 기반 온라인 클래스를 판매하는 플랫폼에 들어가 보면 드로잉, 일러스트, 캐릭터, 웹툰, 이모티콘 같은 디자인 계통 교육열이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종이에다 바로 그린 그림이 집을 꾸미는 액자가 된다? 시장성도 있고 확장성도 좋은데?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종이액자 만드는 법


ㅣ 혹시 제가 곧 출판을 할 예정인데 굿즈로 바로 그림 액자를 사용하는 게 가능할까요?


당시 나는 첫 책 출판에 앞서 책과 엮을 굿즈를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운동 관련 물품(스포츠 타월, 손목아대)이나 소소한 생필품(노트, 포스트잇)을 제안했지만 나는 내 책에 좀더 잘 맞는 걸 찾고 싶었다.


스포츠 타월이나 손목 아대는 헬스 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장비였고 내 책에서 다루는 크로스핏과 달리기 운동에는 딱히 필요한 장비가 아니었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달리기와 크로스핏은 상극에 가까운 운동이공통 장비라곤 티셔츠, 레깅스밖에 없었다. 책의 굿즈로 의류를 자니 객단가가 너무 비쌌다. 그냥 노트나 포스트잇을 주자니  너무 특색이 없었고. 도저히 내 머릿속에서는 더 나은걸 찾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그때 만난 게 종이 액자였다.


비대면 시대에 패키지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H님의 업무 상 고민에 대한 발표를 듣는 중이었는데 바로그림 상품이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종이책과 종이액자. 뭐로 보나 어울리는 그림이었으니까.


내 책 『좀더 단단한 내가 될래는 기본적으로 인스타툰 @달리는 크린이('달리기를 좋아하는 크로스핏 어린이'라는 뜻으로 달리기와 크로스핏에 관한 만화)에 기반한 운동 에세이였기에 매 글마다 삽화가 들어갔고 구매할 것 같은 대상도 우선적으로는 만화를 보고 팬이 된 팔로워 분들이었다. 액자에 내 그림을 넣으면 어떨까? 어차피 책에도 챕터별로 내 그림이 들어갈 텐데. 책을 인상 깊게 읽은 사람들이 액자 속 그림을 볼 때마다 책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달리는 크린이 x 바로 그림 콜라보 액자 사용설명서


종이액자는 비단 크로스핏터와 러너가 아닌 잠재고객 대상으로도 유용할 터였다. 운동하고 싶은데 생각만 하는 사람들, 운동에 관해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사람들도 액자는 쓸테니까 말이다. 얼마 후 나는 H님께 굿즈를 제안했고 출판사 논의 후 사정 상 객단가를 조금 더 낮출 수 있는지 문의드렸다.


뜻밖에도 전액 무료로 300개의 액자를 제공받게 됐다. 나중에 마케팅적으로 도움을 달라는 말과 함께 나는 내 책과 어울리는 굿즈를 제 때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yes24 굿즈 제공 이벤트

 

yes 24 종이액자 증정 이벤트
굿즈를 받은 사람들


이후에도 H님은 내 책을 재밌게 읽은 독자이자, 어떻게 하면 출간 사후 홍보를 잘할 수 있을지 함께 의논해주는 든든한 동료가 됐다. 제지 산업을 잘 알고 있는 H님 덕분에 출간 전에 책 표지 질감이나 디자인 규격에 따른 심미성에 대해서도 새로이 배울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작년 마케팅 모임에서 만난 인연 중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모임에서는 그밖에도 다양한 일이 일어났다.

면접을 앞둔 회사의 마케터가 모임에 속해있어 사전에 팁을 얻는다거나, 느닷없이 맡게 된 업무를 앞서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듣고 난 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거나.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소개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일들, 생각을 나누고 실천으로 옮기는 일들. 이런 게 가능해진 건 모두 다 우리가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란 말이 있듯이 불가해성은 신기하게도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모임이 잘 끝나고, 12월부터 1월 말까지 두 번째 모임이 진행됐다. 이 모임에서는 S와 J라는 분이 유독 기억에 남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서 더 자세히 이어나가고자 한다.  


(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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