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도로 위의 사람들

단편 소설 [로드킬]

by 슬기

도로에 무엇이 있든, 달리는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급행 버스 정류장. 퇴근 시간이라 얼굴들이 하나같이 피로하고 예민해 보였다. 누군가의 팔꿈치나 가방이 스치지 않도록,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줄을 섰다. 서로를 보지 않으려고 앞만 보면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신경 쓰는,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닿지 않으려는 묘한 공기.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A도 그중 하나였다.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버스 전광판에 적힌 ‘5670 3분 전’이라는 문구를 확인하고는 줄의 끝자리에 섰다. 예상보다 줄이 길어 이번 버스는 못 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핑곗거리가 생기자 되려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는데, 이런 A의 마음과는 달리 꽉 막힌 도로에는 경적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사고라도 난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뒤에서 누군가 투덜거렸다. A는 자연스럽게 다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그 사이 줄이 조금 앞으로 당겨졌다. 반 걸음 앞으로 움직이던 순간이었다.


“혹시… A 아니야?”


퇴근 시간의 정류장은 늘 시끄러웠고 이름 하나쯤 겹치는 건 흔한 일이었다. A는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A? 나 B야.”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A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게 낯선 얼굴이 서 있었다.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그대로도 아닌 얼굴.

B였다.


“오랜만이다.”


눈이 마주치자 B는 환하게 웃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웃음 앞에서는 거절이나 망설임 같은 감정이 생길 틈이 없었다. A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 웃음이었지. 인사를 할지 고개만 끄덕이면 될지, 판단하지 못한 채 서 있는 동안 줄은 다시 움직였다. 둘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피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여기서 다 보네.”


A는 숨을 고르며 머릿속 여러 문장을 지웠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같은 말들. 그 어떤 것도 지금의 상황에 꼭 맞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 버스 타?”


B가 물었다. A는 “응.” 하고 대답했다.


“이 근처 다녀?”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능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직장, 생활, 그동안의 시간들. A는 잠깐 망설이다가 가장 짧은 답을 골랐다.

“응, 거래처가 여기라서.”

“아-”


B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A를 봤다.


“난 퇴근했어. 회사 사옥 이전했거든. 저 쪽으로.”


손으로 회사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내 괜히 그랬다는 듯 손을 내렸다. 머뭇거림이 어색해 A는 자신의 근황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난 프리랜서야.”

때마침 빨간 버스가 왔고 둘의 대화는 끊겼다.

번호 판 앞으로 미끄러지듯 버스가 들어왔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A와 B는 거의 동시에 버스에 올랐다. 올라타자마자, 뒤에서 카드 찍는 소리와 기사님의 짧은 출발 안내 멘트가 함께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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