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로드킬]
둘이 함께 다녔던 회사 사무실은 유난히 밝았다.
아침 열 시와 오후 여섯 시가 비슷한 조도를 갖고 있었고, 창이 작아서 그런지 바깥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실내의 밝기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의 감각은 햇빛이 아니라 일정표로 나뉘었다. 오전 정기 회의, 점심 직전의 호출, 퇴근 무렵 갑자기 잡히는 짧은 미팅. 메신저 알림 소리가 하루를 잘게 조각냈고 그 사이에서 직원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였다. 누구도 그 속도를 정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연말 성과 평가가 다가오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멀리 나아갔는지 비교될 거라는 걸.
A는 문득 어느 한 금요일 오후를 떠올렸다. 주말을 앞두고 저마다 연차도 내고 반차도 내던 시간이었다.
“A, B. 이 데이터 월요일까지 정리해서 시트로 만들어. 할 수 있지?”
차장이 USB를 건네며 웃었다. A는 “네”하고 받았다.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그날 저녁, 직원들이 하나 둘 퇴근하고 사무실이 비었고 형광등 불빛만 밝게 남은 책상 앞에서 A는 일치하지 않는 데이터 값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눈이 시큰거렸다. 잠시 바람을 쐴 까 생각하다가, 쉬면 다시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A는 단념했다. 저녁 8시쯤, B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편의점 앞인데 뭐 필요한 거 있어?”
A는 읽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 10분쯤 지나 B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따뜻한 두유 음료수 두 개를 들고.
“마셔, 배고프겠다.”
B는 A 책상에 음료를 놓고 자기 자리로 갔다. 컴퓨터를 켜고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거기 있었다. 손에 잡히는 두유는 따뜻했다. 배가 고팠던 A는 고마웠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했다. 왜 쟤는 금요일 밤에 편하게 밥도 먹고 편의점에 다녀올 수 있는 거지, 왜 나는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그 감정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A는 두유 병을 쥔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자정 무렵, B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사무실에는 A의 키보드 소리만 간헐적으로 남아 있었다. A의 모니터에는 여섯 개의 시트 탭이 열려 있었고 이제 마스터 시트 하나만 남아 있었다.
“집에서 연락 와서. 먼저 갈게.”
B는 가방을 어깨에 메며 덧붙였다.
“너무 무리하지 마.”
A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화면에 뜬 오류 값들을 지우고 다시 함수를 썼다.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키보드만 두드렸다. 잠시 뒤 출입문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났고, 그 소리는 생각보다 또렷하게 남았다. 사무실은 다시 원래의 밝기로 돌아갔지만, 자리는 하나 비어 있었다. 월요일 오전, 차장은 시트를 확인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요즘 애들이 일 하나는 빠릿빠릿하게 잘한다니까.”
칭찬이었지만,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애매했다. 박수도, 시선도 없었다. A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B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야근하던 날, 간단히 밥을 먹고 오겠다며 나가서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들어오던 얼굴.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던 얼굴. 지금은 웃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게 A와 B 사이의 전부였다. 경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했고, 동료라고 부르기엔 너무 멀었다.
그날 오후, A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을 때였다. 종이컵에 물이 차오름과 동시에 여자 대리 둘이 들어왔다.
“A는 일을 잘하는데 좀 각이 서 있지.”
“B는 똘똘하진 않은데, 그래도 착하잖아.”
대리들은 A를 힐끗 봤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또렷해졌다.
“근데 정규직은 한 명만 뽑는대.”
“누가 될까? 난 A 같은데.”
“글쎄. 요즘은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
A는 커피를 든 채 그대로 복도로 나왔다. 손이 떨려서 복도에 서서 한 모금 마셨는데, 커피는 쓰고 너무 뜨거웠다. 혀가 데인 감각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모니터를 켜자마자 B가 다가왔다. 아까 엑셀 파일을 공유했다고 화면을 가리켰다.
“이 피벗 테이블 어떻게 만드는 거야? 계속 오류 나는데.”
A는 화면을 한 번 훑어보고 말했다.
“데이터 범위 설정이 잘못됐잖아.”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지만 굳이 감추지 않았다. B는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고마워.”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이런 거 진짜 잘한다. 부럽다.”
A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B의 ‘부럽다’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진심이든 아니든 알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되는 순간,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수고했다며 팀 회식이 잡혔다. 삼겹살집은 시끄러웠고, 탁한 연기가 천장에 낮게 걸려 있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간 뒤 차장이 웃으며 B를 향해 물었다.
“B, 오빠 의사라며? 무슨 과야?”
“정형외과요.”
“아이고. 잘됐네. 우리 남편이 무릎이 안 좋아서.”
차장이 소주를 따라주며 웃었고, 대리들도 따라 웃었다.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B도 웃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A는 그 대화를 들으며 삼겹살 한 점을 집었다. 불판 위에서 너무 오래 익은 고기는 질겼고, 씹을수록 딱딱했다. 정규직 전환 자리는 한 자리뿐이라고 했는데…. 소주를 들이켰는데, 유난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