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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7. 2019

누구나 잘하는 게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크로스핏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있어도 정작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못하는 것도 다 다르다. 가령 난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걸 참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몇 년 후, 한국에는 소셜미디어(SNS)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이미지 콘텐츠나 영상 콘텐츠에 열광했다. 한국 성인 1인 당 평균 독서량은 해가 갈수록 저조해지는데 소셜미디어 하루 이용량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갔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이 툴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지와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생각은 곧 실천으로 옮겨졌고 방학을 틈타 신촌에 있는 방송아카데미를 등록했다. 포토샵 한 달, 애프터 이펙트 두 달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영상보다는 이미지 편집 기술에 좀 더 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로 기업이나 정부 산하 기관에서 주최하는 여러 소셜 마케팅 대외활동을 하면서 카드 뉴스나 모션 그래픽 영상 기획, 제작에 익숙해지게 됐다. 최종적으로는 주 포지션이 콘텐츠 마케팅인 음악 회사 마케터가 됐다.


내가 배운 이미지와 영상 제작 능력, 그 이전에 배운 인문학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능력, 또 어릴 적부터 사물이나 현상에 호기심 갖고 관찰하기 좋아했던 기질, 이런 것들이 주먹밥처럼 뭉쳐져 30대인 지금까지도 어찌어찌 밥벌이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개인 과거를 끌어왔지만 이처럼 누구나 잘하는 게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 기질이 있고 그래서 그 기질이 기술과 만나 특기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나는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드는  중요하단 생각을 자주 했다하루가 24시간이라는 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잘하는 것에 투자하는 쪽이 잘 될 확률이 훨씬 높았다.

타고난 강점과는 거리가 먼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보통은  되기가 참 어려웠다. 잘하고 싶어서 죽도록 열심히 했는데도 겨우 평균밖에 안 됐을 땐 드는 자괴감은 어떡하나. 그래서 결국에는 본인이 잘하는 걸 알고 그걸 더 잘하게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게 중요했다그건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스핏이 좋은 이유는 각자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어서다. 운동하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뭘 잘하는지 눈에 딱 보였다. 


아, 이 사람은 무게 드는 운동을 잘하겠구나.

아, 저 사람은 철봉에 매달리는 운동에 강하겠구나.


실제로 크로스핏 박스에서는 이를 가리켜 크게 '돼지'와 '멸치'라는 두 그룹으로 나눠서 분류하곤 다. 역도를 너무 잘해서 상대적으로 짐네스틱(체조) 계열에 취약한 돼지들과, 가벼운 몸 때문인지 짐네스틱 운동과 유산소에서 빛을 발하는 멸치들. 크로스핏은 그들에게 늘 공평하게 기회를 줬다. 어느 날에는 돼지가 잘하는 운동이 나오면 다음날에는 멸치가 잘하는 운동이 나와서 양팔 저울처럼 세의 수평을 맞췄다. 그리하여 돼지와 멸치들에겐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고, 크로스핏에 한번 빠지면 출구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니아 층을 형성해냈다.


크게 두 분류로 나눠서 살펴봤지만 크로스핏이란 본디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능력치를 뽑아내야 하는 고강도 운동이라 본인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힘, 호흡, 끈기, 민첩성 같은 스탯 능력을 파악하기 용이했다. 어떤 동작이 더 수월하고 어떤 동작이 더 힘든지는 개인마다 상이했다. 키가 크고 작고, 선천적으로 힘이 세고 약하고, 아킬레스건이 길고 짧고, 성격이 독하고 안 독하고, 이런 작은 차이가 곧 특별함으로 간주되는 운동이었다. 다시 말해 다양성이 존중되는 운동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내 입장에서는 이 같은 환경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일반 회사에서는 누가 뭘 잘하든 뭘 못하든 관여치 않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잡음 없이 이윤 창출이라는 단일 목적을 이뤄내려면 인간을 매뉴얼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회사에서는 우리 기업의 인재상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람을 뽑을 때는


"상사가 부당한 것을 요구할 때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본인이 이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해봐라"


같은 질문들로 두뇌 회로를 어지럽힌 채 정형화되고 관리하기 쉬운 신입들을 선별해냈다. 내가 아닌 상사, 내가 아닌 조직. 주체는 나인데 왜 주목은 외부적인 것들에만 하는지 참 아이러니했지만 대개가 그러했다. 회사는 말 잘 듣는 사람들로만 골라 뽑은 후에도 부단히 일방향적인 교육을 시켰다.


"회사가 널 왜 뽑았는지 생각해봐."


맹자의 역지사지 地思之 이상하게 폭력적으로 활용하며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반문하고 싶었. 


"그럼 내가 왜 이 회사를 왔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게요"


사실 필요하니까 뽑은 거 아닌가. 저성장 시대에 갈수록 악화되는 취업난 속에서도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건 운과 타이밍, 서로의 이해관계가 모두 맞아떨어져서일 테다. 그런데 서로 맞춰갈 생각을 해야지 자꾸만 회사 입장에서만 생각하라 그러니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어느 회사 누구이기 이전에 우리는 각자 고유한 자신이므로 굳이 안 맞는 옷에 억지로 단추를 채워 넣을 필요는 없었다. 요즘 같이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에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며, 여유가 다면 더 질 좋은 기성복을 새로 사 입는 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결국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굳이 자기 살을 도려내면서까지 헌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후로부터 나는 그걸 매일 깨닫고 있고 삶에 있어서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 또한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갈수록 단단해지는 자아를 보면서 몸과 마음은 정말 연결돼있구나 깨닫게도 됐다.


"이 일만 계속했더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회사 안 다니면 뭐하지? 난 잘하는 게 딱히 없는데."


서른에도 아직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럼 나는 크로스핏을 한번 해보라고 추천한다. 그러면 알게 될 거라고. 여긴 정말 다양하고 누구나 하는 게 있듯이 반드시 너도 잘하는 게 있을 거라고. 사회나 시스템이 강요하는 네가 되기보다 다움을 찾는 네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네 삶이 좀 더 주체적이고 네 마음이 좀 더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건강한 개인이 많아질수록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크로스핏이라는 커뮤니티 운동 안에서도 나아가 가족과 친구 관계 안에서도 결국 나 자신이 건강해야 모든 것들이 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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