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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7. 2019

누구나 못하는 게 있다

단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운동

운동하기 싫지? 너 좋다는 것만 해서 언제 늘래?”


일 년째 같이 운동하는 오빠가 오늘따라 밉게 핀잔을 줬다. 사실 운동이란 게 내 돈 내고 내 마음이 동해야 하는 건데 이렇게 욕먹어가며 해야 하나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바로 꼬리를 내렸다. 못하는 더블 언더(2단 줄넘기) 운동 동작을 안 한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눈치라는 걸 보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 핀잔주는 사람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닮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럴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뭐라 하면 기분 나쁜 척 발끈하기라도 했을 텐데. 오빠는 매일 같은 시간 운동하는 동무이자 먼저 길을 닦고 나아간 자랑스러운 선배였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말이 맞다고. 내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더블 언더를 했다.

타닥, 툭. 타닥, 툭.

어김없이 내 다리는 줄에 걸렸고 결국 얼마 안 가 줄넘기를 내려놓았다. 몸에 좋은 약도 너무 쓰면 먹기 힘들기 마련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 판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리 만무했다. 조금 연습하고 왜 또 금방 내려놓냐고 오빠가 다시 핀잔을 줬다. 그의 미간은 30cm 자의 mm 눈금처럼 좁아져 있었다.  


"누구나 못하는 게 있다고!"


빽 소리를 지르고서 줄넘기를 놔버린 곳에 주저앉아버렸다. 앉자마자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주물렀다. 왜 나는 이 동작을 할 때마다 정강이가 아픈 것인가. 이 운동은 정말 나랑 맞지 않는 것인가. 오빠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깐 빠져가지고."


한때는 우리 박스의 미래다. 슈퍼 루키다. 침이 마르게 날 칭찬했던 오빠가 한심한 얼굴로 내 옆을 지나갔다. 그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서운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박스에 덩그러니 남은 나는 마치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 이 실력에 백조는 될 수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못하는 게 있다. 신이 아닌 사람이니까.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으면 또 잘하는 게 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살아야 되는 것이다. 부족하니까 서로 채워주고 보완해주면서 사회적인 동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난 혼자 힘으로 해내지 못하는 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봐요 언니, 좀 더 높이 뛰고 팔을 좀 더 붙여서. 그리고 발을 절대 앞으로 내밀지 말고!”


크로스핏터이자 PT샵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는 동생이 줄곧 내 옆에 딱붙어서 더블 언더(2단 줄넘기)를 잘하는 방법을 요목조목 알려주었다. 그 날은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Crossfit Games Open) 대회 가 있던 날이었다. 세계 크로스핏터들의 축제라고도 불리는 이 대회는 연 중 1회, 총 5주 동안 진행되며 모두가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자기 기량을 남김없이 표출했다. 그리고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그 대회에 더블 언더(2단 줄넘기)가 나왔으니 나 또한 쥐어짜 내서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중요한 대회이니만큼 동생도 내 역량을 어떻게든 끌어올려주려 이렇게 도움주는 것이고. 예의 툴툴대던 선배 오빠 또한 어느새 내 앞에 와서 왜 자꾸 줄에 걸리는지 어떻게 뛰어야 효율적으로 뛸 수 있는지 조건을 건넸다. 그렇게 모두의 크고 작은 도움에 힘입어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 20.2가 끝이 났다(20은 2020년에 진행한 대회를 의미하며 소수점 2는 총 5주 동안 진행되는 대회의 2주 차 운동이라는 걸 뜻한다)


그날 나는 내 생애 제일 많은 더블 언더를 해냈다. 제한 시간 20분 동안 총 169개의 더블 언더를 했다. 20분이란 시간 안에 더블 언더 외에도 토투 바(철봉에 매달린 채 몸을 폴더처럼 발끝을 철봉에 갖다 대는 운동 동작)나 덤벨 쓰러스터(덤벨을 양 어깨 위로 올리고 스쿼트) 같은 동작을 섞어서 해야했으나 어찌 됐든 이 중에 내가 제일 취약했던 운동이 더블 언더였다. 거짓말 같지만 그전까지는 한 번도 정규 와드에서 더블 언더로 운동을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  

 



"더블 언더 못하면 두배 수로 뛰어. 오늘은 2단 뛰기 100개니까 1단 뛰기 200개로."


제한 시간 안에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게 크로스핏 운동이라 그런지 코치님은 와드(WOD, 크로스핏에서 말한 오늘의 운동) 때마다 내게 섣불리 더블 언더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남아서 연습 좀 하고 가라고는 했다.


나는 오늘의 운동으로 더블 언더 100개가 나오면 1단 뛰기 200개, 더블 언더 200개가 나오면 1단 뛰기 400개를 다. 못하는 더블 언더와는 달리 1단 뛰기는 곧잘 했으며 200개를 하든 300개를 하든 400개를 하든 정강이가 아프지 않았다. 기술은 없지만 근성 하나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여러 번 하는 편이 좋았다. 그러니까 더블 언더 못한다고 해서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지도 않고, 오늘 할 운동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서 평소 연습을 게을리 한 부분이 컸다.


선배 오빠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자괴감이 든 것도 어쩔 수 없이 내가 남아서 더블 언더를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갔다. 못하는 것에 대해 채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선배 오빠뿐만 아니라 코치님, 언니, 친구, 동생들이 자주 물어왔다. 아직도 더블 언더 안돼서 어떡하냐. 이렇게 해서 너 오픈 때 어떻게 할래. 그리고 얼마 안가 세계 크로스핏터들의 축제 오픈 대회에서 정말로 더블 언더가 나왔다. 


운동이 공개되자마자 좌절했다. 자신 없었지만 임미 등록을 했으니 별 수 없이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줄넘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대회1주 차에 더블 언더가 나왔더라면 등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2주 차에 나와버리다니.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 날들의 연속인가. 왜 못하는 건 꼭 해내야 하는 걸까. 신세한탄을 하며 줄넘기를 연습하는데 신기하게도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 옆에 자석처럼 붙어 앉아 더블 언더를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못하니까 관심이 없거나 왜 평소에 연습도 안했냐고 화낼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의외였다. 운동 끝나고 밥 한번 같이 안 먹어본 언니가 느닷없이 와서 1:1 줄넘기 지도를 해주질 않나. 3단 줄넘기도 곧잘 하는 오빠가 팁을 건네주질 않나.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한참을 박스 구석에서 울상 짓고 있으니까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줄에 자주 걸리는데도 또 넘으려고 하는 모습에 손 내밀어주고 싶었다고...


생각해보면 노력하는 사람 옆에는 늘 비난보다 응원이 따르기 마련이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크로스핏 운동이다.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기 위해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동작을 해내기 위해 더 노력하는 법이니까.


사실 일상도 마찬가지다. 잘하려고 하면 끝도 없고 애초에 우리는 완벽해질 수 없다. 그러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내 단점을 인정하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에 대해 말하고 도움을 받으며 끊임없이 도전해보자.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더블 언더의 벽은 높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날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하는 게 있듯 못하는 게 있다.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Crossfit Games OPEN)

1년에 한 번씩 전 세계 크로스핏 챔피언을 뽑는 대회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 이 대회는 각 나라별로 남/여 1등을 뽑아 게임즈로 가는 예선전 대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크로스핏 정식 지부 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이벤트이며 전 세계 크로스핏터들의 축제라고도 불립니다. 오픈 대회는 총 5주에 걸쳐 5개의 와드(운동)를 수행해야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에 그 주의 운동을 공개, 운동 기록은 그다음 주 화요일 오전 9시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운동기록을 바탕으로 내가 속한 크로스핏 박스에서의 내 순위, 한국에서의 순위, 세계에서의 순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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