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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살아 있으면 돈은 필요 없어요.”

<파출소장 일기> 제3화

by 전상욱



요즘 누가 보이스 피싱에 당하겠느냐고요?

가장 흔한 보이스피싱인 전화 금융사기!

많은 사람들이 내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에서 발표한 《보이스피싱 현황(2016~2020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가 2016년 전국적으로는 17,040건에 1,468억 원이며 2020년에는 31,681건에 7천억 원에 달했다. 기관 사칭형과 대출사기형을 포함한 피해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피해 건수는 6 천여 건이 줄었지만 피해액은 600억 원이 증가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보이스피싱의 피해를 당한다. 연령별로 피해 유형이 다르다.

2020년 통계자료 연령대를 분석해보면 20대 16.8%, 30대 13.9%, 60대 13.2%, 40대 24.3%, 50대 29%로 가장 높으며 전 연령대에 걸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보이스피싱의 피해 유형은 거시적으로 ‘대출빙자형’과 ‘사칭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출빙자형’은 말 그대로 금융사를 방패막이 삼아 싼 이자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수법을 쓴다. 유출된 대출신청 정보를 악용해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게 접근을 한다. 대출 실행에 필요한 수수료부터 먼저 입금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사칭형’은 금감원이나 금융기관, 경찰이나 검찰을 사칭해 예금 보호를 해주겠다며 안전 계좌로 이체할 것을 요구한다. 007 작전처럼 우편함이나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현금을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 사례는 참 다양하고 세월 따라 많이 변하며 교묘한 수법을 사용한다.

문자로 앱을 깔도록 유도하여 전화기에 앱을 깔면 전화기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그 유형도 가지가지다.



“안녕하세요,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홍 00 수사관입니다.” 이렇게 전화가 오거나 신입사원 모두 급여계좌를 개설해야 하니 금융거래 정보를 제출하라는 메일을 보내거나, 급하게 이체해야 하는데 갑자기 공인인증서가 안 되니 대신 송금해줄 수 있냐는 동기의 카톡이거나, 112 번호로 걸려온 전화로 사건 조사를 위해 개인의 금융정보나 신용카드 번호를 요구하거나 송금인의 명의를 가상통화 거래소 회원명으로 변경하여 송금하라고 요구한다. 저금리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정부기관 사칭형, 개인정보를 악용한 맞춤형 보이스피싱, 자녀 납치 협박 전화, 출처 불분명 파일 이메일 문자 보내거나, 금감원 팝업창과 함께 금융거래 정보 요구 등 갈수록 대범하고 지능적이다



보이스피싱의 그 흔하디 흔한 검찰청을 사칭했어요

관내에서 정말로 안타까운 보이스피싱 사고가 있었다.

할머니에게 일어난 사고는 ‘사칭형’ 보이스피싱이었다.



안녕하세요,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김 00 수사관입니다. 이렇게 수사관을 사칭하면서 할머니 주민등록번호 주소 자녀 이름 등을 정확하게 말해서 할머니께서 사실로 믿게 만들었다. 은행계좌가 모두 도용되었기에 수사관이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했다. 일단 모든 돈을 인출하여 집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 말을 믿고 거래은행으로 달려가 현금 2천만 원을 인출하였다. 그 은행 직원들은 의심이 되어 할머니가 사는 집까지 안전하게 바래다 드렸다. 그 직원은 자기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아뿔싸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 00 수사관을 사칭하며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자기들이 할머니의 돈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 놓을 테니 집 앞의 우측 담장 위에다 검정 비닐봉지에 돈을 담아 놓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불러주는 대로 적으라고 알려주자 할머니는 “그놈 목소리”만 믿고 2천만 원이 담긴 비닐봉지를 담장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방으로 들어와서는 열심히 노트에 불러주는 대로 적었다. 세 시간가량을 노트에 기록하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밖을 나가보니 검정 봉지는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잘못된 것인 줄을 알고 112에 신고하게 된 것이다.



신고를 받고 할머니 댁을 가보니, 빌라 1층 계단에 허름한 옷을 입고 할머니께서 한정신 나간 상태로 우두망찰 앉아계셨다. 돈을 찾아드릴 방법이 없어서, 출동한 우리들도 안타까워했다. 할머니를 집에까지 모셔다 드린 은행 직원은 자책까지 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할머니 곁에 남아 있었더라면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계속 후회하며 한탄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사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기관이나 방속국에서도 많이 홍보하고 있다. 은행에서도 500만 원 이상 출금하게 되면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것이냐고 체크하는 용지를 주어서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형식적으로 체크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경찰관서에 통보되거나 예방하는 사례는 많지가 않다.

최근에는 계좌번호로 자금을 이체하지 않고 만나서 전달하는 대면 편취가 증가하는 추세다.






연락이 두절된 외아들의 이야기

아침 조회 후 커피 타임을 갖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 한분이 파출소 문을 급하게 두드리며 들어섰다.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입술이 바짝 마른 채로 “우리 아들만 살려 달라, 돈은 필요 없다.” 덜덜 떨면서 말을 했다. 급기야는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달라”라고 애원을 했다.



할머니 말씀을 듣자마자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하고 돈을 보내셨냐고 물어봤다. 안타깝게도 이미 어젯밤에 3천만 원을 송금한 상태였다. 우리들이 사기를 당하신 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로 당신 이야기만 하셨다. 설명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할머니의 사연을 거칠게나마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아들은 3년 전에 사업을 크게 하다가 경영이 악화되어 폐업을 했다. 그 뒤로 이혼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들이 미덥지 않아서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뒤로 소식을 끊고 살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그 아들이 살려달라며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애원하는 목소리가 아들이 분명했다. 우리 아들을 전화기를 통해 들었는데 우리 아들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이스피싱이 확실하니 아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들과 어렵사리 통화가 되어 그간의 사정을 알렸다. 혹시 어제 어머님께서 전화하신 거는 아냐고 했더니 아들의 대답이 황망했다. 엄마한테 전화 온 거 알지만 내가 어려울 때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안 받았다고 했다. 아직도 서운하다고 했다. 참 모자지간에 씁쓸한 장면이었다.

아들만 살아있으면 돈은 필요 없다던 애타는 할머니의 마음과 달리 아직도 그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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