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ad Jun 27. 2019

'비난'과 '비판'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비판’과 ‘비난’의 차이는 무엇일까?


‘비난’과 ‘비판’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상대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비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썰전’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판이란 무엇이 가능하고 또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비판이란 '옳고 그름에 대한 확정된 판결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를 고찰하고 이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비난이란 무엇인가?

비난은 상대의 내적 영역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상황적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상대의 내적 성향 즉, 인간성, 성품, 성격 등을 근거로 존재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반대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귀인을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에서 찾는다.

이를 우리는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라 한다. 쉽게 말해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이 무엇이 문제일까?

대부분의 갈등은 합당한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사실 비난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논리와 이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깔려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관계, 영역, 자산에 대한 손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비난이라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해결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선택한 비난은 두려움을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전파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비난의 끝은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갈등의 시작인 것이다.


‘네가 감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느냐?’라고 되묻기보다 ‘당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느 지점에서 다른지 살펴보자’라고 첫 단추를 끼운다면 갈등은 생각만큼 증폭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행위의 근원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를 가져다 붙여가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와 감정적 반응에 대한 수습의 도구로서의 논리적, 이성적 사고는 전혀 다르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수로를 내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이를 보고 한마디 건넨다. “방향이 조금 잘못된 것 같습니다. 조정이 필요하겠어요.” 그러자 땅을 파느라 온몸이 땀에 젖은 그 남자는 귀찮다는 말투로 지나가는 행인에 응수한다. “제가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빨리 땅을 파야 돼서요. 마저 끝내고 이야기합시다.”


우리는 간혹 문제 해결 행위 자체에 매몰되어 문제의 근원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누군가로 인해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그 출발점이 비난인지 혹은 비판인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이 어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