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 Y2K라는 버그로 한창 온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DSL이라는 초고속 인터넷 붐을 타고 대한민국 곳곳에 인터넷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 '펜티엄 컴퓨터'로 그 대열에 올라탔던 바로 그때를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때 제 브라우저의 홈페이지도요.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저도 '야후'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몇몇 사이트에서 여전히 쓰고 있는 유치 찬란한 ID와 패스워드들은 그때 처음 만들었던 제 야후 계정의 것들이었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도 인터넷 열풍의 최전선에서 많은 추억을 안겨줬던 바로 그 야후가 쓰러지려 합니다. 야후의 핵심 사업인 인터넷 사업부문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지난 4월 18일 10여 곳의 기업이 매각 입찰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야후의 핵심 인터넷 사업부문은 바로 '야후 포털사이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와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포털사이트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1) 검색 엔진의 역량, 2) 콘텐츠 역량(큐레이션 + 자체 개발)입니다. 특히 탄탄한 검색 및 이 O&O로부터 창출되는 검색광고 수익이 콘텐츠 역량 강화로 재투자되면서 유저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검색 유저 기반 위에서 Diplay & Video로 수익기반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Google의 등장 이후 야후는 급격하게 검색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면서 이 균형이 잃어 갔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모바일 시대로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 한 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우여곡절로 5번이나 CEO가 바뀌면서 스스로 무너져 갔습니다.
이후 구글 출신의 마리사 메이어(Marissa Mayer)를 CEO로 영입하면서 Tech Media 기업으로의 변화를 모색했습니다만, 새로운 콘텐츠 역량 강화 시도들이 무위로 돌아가면서(Yahoo Magazine 실패), 결국 인터넷 공룡의 종말이 한 발 더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현금이 필요했던 야후이지만 처음부터 핵심 인터넷 비즈니스를 매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야후가 가지고 있는 Alibaba의 주식을 Spin-Off(분사) 방식으로 매각하려고 했었습니다. 주식을 그냥 팔아서 현금화를 하는 경우에는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절세를 위해서 회사 분할의 형태로 알리바바의 주식을 처분하려는 참신한 계획이었습니다만, 계획이 발표되자 야후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국 국세청(IRS)은 이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자칫 잘못 분사했다가는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불확실성을 배제하고자 야후는 Reverse Spin-Off(역분사), 즉 알리바바 주식 대신 자사의 핵심 인터넷 비즈니스를 매각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야후의 기업가치 계산을 위해 과거에 미국의 통신사업자인 Verizon이 AOL을 인수할 때 사용하였던 기업가치 측정법(*연간 매출의 1.5배)을 야후에 똑같이 적용하면, 야후의 핵심 인터넷 비즈니스의 가치는 대략 50억 달러 정도로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아무리 야후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월간 방문자 수 기준으로 2억 명에 달하고 있고(US 기준), 이는 구글, 페이스북에 이은 3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 방문 트래픽에 관심이 있는 온라인 미디어/마케팅 회사에게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또한 Yahoo Finance나 Sports와 같은 특정 버티컬에서의 공고한 콘텐츠 역량,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온라인 광고 기술 및 노하우도 몇몇 업체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포인트입니다.
지난 4월 18일, 야후는 사업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마감하였습니다. 몇몇의 해외 기사에 따르면 통신사업자인 Verizon과 YP Holdings를 포함한 몇몇의 미디어 회사들, TPG나 Vain Capital 같은 투자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중 Yellow Page (우리나라의 전화번호부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YP Holdings 같은 미디어 회사나 여러 개의 기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투자회사들이 야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이유가 분명합니다. 미디어 회사들은 자사의 서비스와 야후 서비스 사이의 시너지 및 온라인 광고 기술/노하우를 기대할 것이고, 투자회사들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기업가치를 Turnaround(기업회생/가치 반등) 하여 차익매매를 실현코자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Verizon의 경우에는 '통신사업자가 왜?'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미국 내 1위 사업자로서 자사의 통신망 가입자들에게 월 이용료를 현금으로 꼬박꼬박 받는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비즈니스 모델에 위기신호가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요금인하 압력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으며, 통신망 가입자 수가 포화상태에 다다라 막대한 마케팅비를 들여서 경쟁사와 시장 점유율 경쟁을 해야만 하는 등, 좀처럼 추가 성장의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구글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Project Fi(기존 통신망을 임대하여 싼 가격에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알뜰폰 서비스) 등의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Verizon은 AOL 인수를 통해 온라인 미디어/광고 사업으로의 다각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AOL은 aol.com이라는 포털사이트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온라인 뉴스 미디어인 The Huffington Post, IT/Tech 전문 사이트인 Tech Crunch 및 Engaget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Verizon 입장에서는 추가적으로 야후를 인수함으로써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겹치지 않는 광고 기술 분야를 상호 보완하거나, 동일한 분야의 인력과 인프라를 통합하여 비용절감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막대한 현금으로 인수를 진행하여 단숨에 회사 수익구조의 체질개선을 이루겠다는 계획인 것입니다.
야후는 오는 6월까지 매각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매각작업이 성사되면 추억 속의 바로 그 야후가 22년 만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됩니다. Verizon이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