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다시 20대로,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아련한 추억과 씁쓸한 푸념 사이 그 어느 경계에서 그땐 참 자유로웠는데 혹은 행복했었는데 라며 저마다의 레퍼토리들을 꺼낸다. 그렇게 우린 서로 웃고, 공감하고 또 때론 위로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젖어든다.
반대로 나는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즈음이면 어떻게든 되어 있겠지... 더 이상 불안해하고 애달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단단한 서른을 희망했다. 무언가를 꿈꾸는 희망의 순간은 항상 짧았지만 마주한 현실은 너무 길기만 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아스피린 마냥 이 짧은 희망들을 그 모질고 긴 시간들을 견뎌내는 데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이 순간이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2007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극장에서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날 나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리로 내몰린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지하철 공중 화장실에서 노숙하며 흐느끼던 장면, 아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얻어내. (You want some, go get it. Period.)”라고 굳게 이야기하던 장면, 그가 부러워했던 비즈니스맨들 틈에 섞여서 두 손을 불끈 쥐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마지막 장면들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는 나도 저렇게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기뻐할 수 있을까라고 되뇌고 되뇌었다.
When all in life’s unfair
Are you strong enough to find another way, another way, a father's way.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엔딩 크레딧 곡 "A father's way" - Seal)
그렇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도쿄에 살고 있다.
내 인생 첫 여권은 아직 유효기간이 많이 남아있는데,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도시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행복을 찾는다.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던 내 말은 그다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그 사이 두어 번쯤은 마치 영화에서 처럼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기뻐하기도 했다. 이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크기는 이뤄낸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바랐던 간절함의 크기에 기인한다. 이 작은 행복들을 바랐던 내 간절함은 그만큼 너무나도 컸다. 그렇게 나는 간절함 사이에 점점이 존재하던 그 짧은 희망들에 기대어 한걸음 한걸음 행복을 찾아왔다.
돌이켜 보건대 희망하는 데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을 하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희망이 그저 형이상학적인 뜬구름이 되어 쉬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했다. 내가 찾는 행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고, 계획을 세우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그 간극을 메워나가는 바로 그런 희망의 기술 말이다. 그걸 꼭 한 번쯤은 담담하게 기술하고 싶었다.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