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정목 Jan 28. 2019

죽음.


저번 주 화요일인 2019년 1월 22일에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직접 치러 본 세번째 장례였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20대 초반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이 블로그를 시작하고 몇 달 안 지나서 돌아가신 장인어른 그리고 이번에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야기 하기에는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매일 살아가면서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찌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덕분에 굉장히 많은 순간들에 대해서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저의 삶에 있어서 "죽음"은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만은 분명 합니다.






올해 할머니는 96세 였습니다. 언제까지 사는 것이 장수의 기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오랜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이야기는 안 하지만 그 만큼 할머니의 죽음은 가족 개개인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 왔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번 장례가 무조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이라는 책을 추천 받고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하고 고민을 하던 "현대 의학으로 연장되는 삶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또한 이 책을 알라딘에서 중고로 구입을 했더니, 책 중간 중간 밑 줄이 그어져 있어서 이전 독자의 의견도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저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물론 가족들이 육체적으로 힘이 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제가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병에 걸려서 진통제라도 정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따뜻한 안방에서 조용히 누워있고, 거실에서는 가족들이 즐겁게 떠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잠이 들고 싶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저의 죽음은 분명히 가족들 개개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입니다. 제가 만약 병이 들어서 죽게 된다면 병간호를 하던 가족들에게는 조금은 기다렸던 죽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서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런 순간들이 저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면 아마도 제가 죽은 후에도 가족들은 제 이야기를 가끔씩이라도 하면서 웃거나 울기도 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도 죽는 순간에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제가 죽게 된다면 이왕이면 가족들에게는 너무 슬프지 않고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에 대해 가족들과 자주 공유를 한다면 분명히 장례를 치르면서 슬프기 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되지 않을까라는 바램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저는 "유서"를 자주 정기적으로 써 볼 것을 정말 권해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고, 이는 가족들에게는 너무 갑작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이 때 유서가 있다면 죽음을 훨씬 더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평소에 생각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안 되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유서에 적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금전적인 면에 있어서도 열심히 벌고 모은 만큼 가족들이 의미있게 살아가길 원한다면 유서로 바램을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장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가끔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꼭 조건을 다는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화장을 해서 수목장처럼 나무가 많고 조용한 곳에 묻어 줬으면 좋겠다라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가족들이 오기 매우 가까운 곳으로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끔씩이라도 오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와이프는 싫어합니다. 저 또한 제 와이프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면 혼자 있게 될 것을 상상하게 되면서 매우 싫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가족들이 아닌 당사자가 주최가 되어야 합니다. 태어난 것에 대한 선택은 없었지만 삶을 살아오고 삶을 마치는 것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지만 그 의미가 더 커질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이 제 삶의 방향을 조금은 틀어 놓는 또 하나의 긍정적인 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블로그 / 더 많은 정보 및 상담신청 :  https://celldna.blog.me

작가의 이전글 [리뷰/보험]최저보증이율 3.75%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