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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일지

42세 증권사 싱글남의 여피스런 일상다반사

by Jeremy Yeun

독거 투자일지만 쓰다가 독거 일지. 작년에 쓴 적이 있었나 싶은데 10월에 쓰긴 했다. 아주 오랜만에 쓰기는 하는데 그 사이에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135134971_10159044011296948_852944037266899589_o.jpg 성산 일출봉 제주 2020


요즘 다단계 천국이다. 전통적인 화장품부터 이제는 여행 다단계까지 판을 친다. 일자리와 가게들이 사라지면서 이제 현대판 막노동으로 내몰리는 판국이다.

인스타 그램을 수놓던 승무원들이 화장품과 의류 판매를 한다. 대한항공 승무원의 70%가 계약직이었다. 승무원에 이어 아나운서도 마찬가지다. KBS만 해도 광고수입이 10년 동안 60% 이상 줄었다. 무소불위의 PD들은 명퇴를 한지 오래고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다. 유튜버로 투신한 이들도 많으나 눈에 띄는 콘텐츠나 팔로워는 보기 힘들다. 누가 쓴 글을 읽어만 주다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행을 못 가는 갈 곳 없는 청년들은 산으로 가고 있다. 홀쭉해진 주머니와 1단계 2단계 점점 조여 오는 부분적인 락다운은 이들을 산으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또 협찬을 한다.


135603640_10159044011571948_3530903330324896594_o.jpg 더 클리프 제주 2020


1인 가계가 40%가 되었다. 이들은 차가 없는 경우도 많을 테다. 마트를 가서 뭔가를 사도 택시 타고 캐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배달앱이나 온라인 주문이 잘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2012년이 피크였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차 수리도 할 게 없다. 사고가 확 줄어드니. 카센터 80%는 망할 것 같다.

어설픈 관계들이 정리되는 것이 팬데믹이 주는 결과였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끼리의 모임도 많이 줄었는데 어설픈 관계야 정말...



135202927_10159044010171948_6124129062610875880_o.jpg 함덕 해수욕장 일출봉 제주 2020



유튜브는 매우 극단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중립적인 타입이라 맞지 않아서 여러 번 권유를 받지만 하지 않는다. 얘를 들면 한없이 뭔가 있어 보여야 하고 허영이 넘치거나 센세이셔널해야 하는 것이 그 바닥이다. 그래야 조회수 팍팍이다. 얼마 전 처음 접한 독거 노총각이라는 분의 유튜브는 내용은 1도 없지만 초극세 사실주의라는 노총각 바닥 중에서도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는 만큼의 위치에서 말을 술술 풀어 조회수가 196만짜리도 있을 정도다. 유튜브에 중간은 없다. 가끔 일반인들이 일상을 올려 대박을 원하지만 말리고 싶다. 나중에 곧.... 주제를 안다. 유튜브 성공하려면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가는 것보다 힘들다.

나는 기본적으로 돌싱녀에 대한 편견은 없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부류는 있다.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는데 세상이 만만찮다. 그렇다 보니 그 어려움에 대한 텐션과 스트레스 해소 혹은 절망감을 세상에, 특히 SNS에서 터뜨리는 것이다. 글빨 조금 있고 얼굴이 깨끗하면 금상첨화다. 페북에서는 미모는 권력이기 때문에 권력을 타고 그 터뜨림은 옷음 치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그러다가 유튜브 하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망한다. 유튜브는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임원 할 만큼의 무언가 자기만의 특출 난 역량이 있지 않는 한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0.01%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2020년 국내 광고회사 등으로부터 사업소득을 지급받은 1인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유튜버)는 4874명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평균 연봉은 416만 원이라고 한다(...) 구독자 1000명 이상, 연간 재생시간 4000시간 이상이면 광고를 붙이고 수익을 내기 시작할 수 있다는데 그것도 힘든 거다....

133598097_10159044010386948_8564866879962936469_o.jpg 함덕 해수욕장 제주 2020

어렸을 때는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에 홀려서 밥때를 놓치고 걷다 보면 3만 보... 4만보... 그러다 4일 차 때 퍼졌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면 또 여행 근육이 생겨서 며칠 걷다가 8일쯤 되면 또 퍼지고 하루 이틀 사력을 더하다가 귀국해서 바로 그 길로 출근하거나 담날 바로 출근하던 것이 예사였다.

요즘은 증권사 리포트를 읽는 비중이 확연히 떨어졌다. 일단 너무 재미가 없다. 시황 같은 경우는 잘 안 맞기도 하다. 업데이트 위주라 기업의 긴 흐름을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스타 애널들 같은 경우는 리포트는 뒷전이고 세일즈 위주로 다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에 비해 근래 개인 페이지들의 주식이나 시황분석 글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가끔 동영상을 첨부하는 경우도 있고 비주얼도 틀에 박히지 않는다. 정말 논문이라 싶을 정도로 자세한 블로그도 많은데 바이오나 기술 관련 쪽에 해당 전문가가 블로깅을 하는 경우다. 시황 같은 경우는 천편일률적인 증권사 시황이기보다 수백 개 종목들을 카테고리 별로 매일 정리하는 페이지도 있을 정도다. 어느 미국 회계사는 미국 기업들을 깊게 회계적으로 파기도 한다. 사실 해외주식을 깊이 연구하는 리포트들은 한국에는 별로 없다. 커버해도 대형사 위주지 스몰캡이나 미드캡 관련은 별로 없다. 테크 중에서 이쪽의 성장이 굉장히 클 텐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증권사 리서치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시황 및 종목분석 방송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구독자와 페이지뷰는 현저히 떨어진다. 그 반면에 삼 프로 TV나 슈카, 수많은 개별 채널들은 특유의 전문성과이나 말랑말랑함, 재미로 압도적인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트렌트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 같다.

134062880_10159044010891948_3637546121921253296_o.jpg 구좌읍 제주 2020

결혼식을 계기로 인맥을 정리하는 기회를 삼는 이들이 많다. 인생 최고(최악)의 날에 축하(애도)하러 오지 않는 이가 과연 나의 지인인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지 않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는 것이다. 카톡이나 페절 같은 간단한 온라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러기 전에 왕래가 뜸했을 것이긴 하다.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사람인데 결혼식에 안 오기는 좀 애매하긴 하다. 나 역시 그동안 연락을 안 했던 사이인데 뜬금없이 연락해서 오라고 하는 것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속좁게 내 결혼식 안 왔다가 싹 정리를 한다. 그래도 어떻게 내 결혼식에 안 와? 섭섭해하면서 말이다.

근데 30대 초중반 때야 결혼식 한참 다닐 때지. 그때 안 오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후반쯤 되면서부터는 혼기를 놓치면서 결혼식에 대해 내가 밀려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이 기쁜 일을 접하면 나도 기뻐야 하는데 한편으로 남겨진 나는 뭐지?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혼식 가는 것에 소극적이 된다. 미혼이 육아를 잘 알기 힘들듯 기혼 역시 전혀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 나 역시 300 여건이 넘는 결혼식을 넉살 좋게 다녔지만 대부분은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 전근 이민 연락두절 등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은 연락이 끊겼으니. 남 좋은 일만 했다는 트라우마가 있지. 결혼하면 아이들 기르고 아파트 사며 자기들 먹고살기 바빠 소개팅 한 건 해줄 여유도 없단다.

그런 면에서 나의 장례식에 안 오는 이들이야말로 관계를 정리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 내 인맥이다. 물론 내가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왔는지 안 왔는지는 알 길은 없다. 뭔가 어떤 이벤트를 통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참 허무한 일이다. 자신도 그렇게 정리가 될 터이니. 이게 한국사회의 한 문화라면 할 말은 없다.

134934990_10159044010631948_2372160843786648984_o.jpg 성산 제주 2020

그동안 여행이 습관이 되어서 습관이 주는 행복이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있다가 없으니 빈자리는 크다. 늘 비행기 타면 날개 옆이었다고 투덜거렸지만 비행기 엔진 소리와 낯선 공항에서의 길 찾기 그리고 하루하루 여정을 소화하며 담은 감정들과 영상들. 그리고 경험들. 여행 마지막 날 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경을 바라보며 칵테일에 입을 맞추고 여행을 반추.... 그리고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 집에 가야지? 렌트한 차를 공항에 반납하고 귀국길을 오르던 시간들.


여행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곧 3단계 가 오겠지만 어디론가 휙 떠나고 싶다.



134135579_10159044010466948_2217716647448866010_o.jpg 성산 일출봉 제주 2020

예전엔 회사에서 2~30대는 일하고 40대는 관리하고 50대는 임원이나 치킨집이라 생각해 40대에는 좀 편해지나... 했는데 점점 40대도 30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들지는 것 같다. 일은 많아지고 책임까지 얹어주니까.

오전에 화장실 한번, 오후에 화장실 한번 이렇게 일을 하니 주중의 쌓인 피로 때문에 금요일은 녹초 상태와 홀가분함에 영화를 보고 마사지를 받고 집에 가면 11시다. 그렇게 금밤이 끝난다. 어렸을 때나 금밤에 클럽 가고 나이트 가겠지 사실 난 그런 문화를 접하지도 못하고 40대에 왔지만.

늦게까지 노는 것도 피곤하다. 더 논다고 더 즐거운 것도 아니다. 적당히 노는 게 낫다. 다음날 주말 하루를 피곤하게 날리는 것도 반갑지 않다. 루틴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솔직히 불금이라는 소모적이고 허세 넘치는 말에 다들 말려들 필요는 없다. 오늘 내가 망가지겠다는 것이 무슨 자랑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보내면 된다. 불금, 불타는 금요일의 반대말은 불쌍한 금요일은 아닌 것이다.

예전엔 주말 일정이 딱딱 정해졌는데 그렇게 금밤을 보내고 잠에서 깨면 토요일 아침이다. 현타가 와 일기나 브런치 글을 쓰다가 이렇게 집에 있으면 안 될듯해서 일단 옷을 입고 무작정 나와서 서울 어딘가에 안착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며 나오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다 익숙한 곳에 다다른다. 그리고 주차를 하고 카페에서 다음 여행 계획을 짠다.

근래 들어서는 그 틀이 진부해져 멀리 떠나기도 한다. 재작년에 가장 잘한 일이 포르셰를 들인 것, 펜데믹까지 터져 국외로 못 나가니 덕분에 한반도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거의 한 달이 걸린 듯. 쪼그만 나라 한 바퀴 도는데도 엄청난 정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세계여행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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