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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담뱃가게 소녀

by 정재혁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이 한 심부름은 바로 담배 심부름이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우셔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심부름을 다녀야 했다. 한창 놀기 바쁜데 심부름을 시키면 귀찮을 법도 했건만, 나는 오히려 아버지의 부름을 은근히 고대했다. 담배 사고 남은 잔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담배를 사러가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남몰래 짝사랑하던 여자아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뱃가게 아가씨’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린, ‘담뱃가게 소녀’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가씨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청소년 보호법’이라는 것이 제정되어 청소년은 술과 담배 등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심부름만 했던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만나던 ‘담뱃가게 소녀’를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다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법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렸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 내 입장에서 나는 사랑을 빼앗겨버린 한 마리 희생양일 뿐이었다. 심부름만 했던 나로선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음에도 좋은 취지에 무조건적인 공감을 표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취지는 옳다. 또 청소년들의 흡연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좋다. 담배 가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낮아 올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주장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로 인해 힘들어질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담배의 주 소비자인 일반 서민 흡연자들 말이다.


내게 ‘담뱃가게 소녀’는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담뱃값 인상은 서민들에겐 다가올 현실이다. 나는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흡연자들이 느낄 박탈감에 동조하는 것은 단순히 가격이 많이 올라서 힘들겠거니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좋은 취지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본인에게 피해가 된다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과거의 나처럼 어렸다면, 그래서 법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나마 마음은 편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참에 담배를 끊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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