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생각할 사, 異다를 이, 非아닐 비
1. 사이(思異) : 다름에 대해 생각하다
'다름'은 우리에게 복합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경험이란 바꿔 말하자면 다른 것에 대한 경험이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곳, 새로운 학문 등을 경험한다는 것은 내게 익숙지 않은 것들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나와 다른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경험함에 있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두려움이 반이고 설렘이 반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새 학기가 시작되면 1년간 같은 반에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개학 전날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인간 기존과 다른 환경을 접하게 됨으로써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이방인', 즉 외국인에게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꽤나 흥미로운 일임에도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러한 만남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더러 있다. 잘 모른다는 것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포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굳이 외국인을 언급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타자'로 언급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동성애자나 장애인, 트랜스젠더와 같은 이들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 사비(思非) : 아님 혹은 틀림에 대해 생각하다
'다름'과 달리, '틀림' 혹은 '아님'은 매우 단정적이며 부정적인 표현이다. '넌 틀렸어' 혹은 '그건 아니야'와 같은 말에서는 진한 공격성이 느껴지며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틀렸다'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수학적 문제나 사회 문제 가운데에서도 답이 비교적 명확하게 갈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답에 대해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사실 '맞다' 혹은 '틀리다'와 같은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사형제도는 유지되어야 하는가' '안락사는 죄악인가' 등과 같은 거시적 사회 문제에서부터, 개인의 진로 선택과 같은 사사로운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고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정답이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틀렸다고 치부해버린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각종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거기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갈등만 심화되고 결코 나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3. 사이비(思異非) : 다름과 틀림에 대해 생각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혼동해서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점이다. 또 대부분의 경우가 '다르다'라고 해야 할 상황에서 '틀리다'는 표현을 쓴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름'과 '틀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름'은 우리에게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인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기심보다 두려움을 훨씬 많이 느끼고 있는 듯하다. 비율로 따지자면 두려움이 80이고 호기심은 20이나 될까. 다른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 틀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타 종교를 틀렸다고 하는 특정 종교인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종교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감정은 사람을 신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같은 시기 조선은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고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조선과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사이비'(思異非)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