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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침묵

by 정재혁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언으로 여겨지는 이 속담이 나오게 된 계기는 아마도 '데마고그', 즉 선동가들의 등장 때문인 듯하다. 데마고그의 어원은 '데마고고스'인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민중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으나, 당시의 민중 지도자들이 점차 선동가로 변질되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정적 의미를 지닌 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선동가의 시초는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는 플라톤이 후에 '중우정치'라고 칭했던 때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암흑기와 같았다. 페리클레스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죽고 난 후, 아테네는 선동가들의 천국이 됐다. 이 시기 정치가들의 가장 큰 목표는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기존 정치가들과 정치가를 꿈꾸는 이들은 누구나 '수사학', 즉 '레토릭'을 연마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이들이 바로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소피스트들이다. 현재로 보자면, 당시 아테네 정치는 포퓰리즘이 유행하던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웅변이 유행하던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침묵의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상대방이 알아서 진리에 도달하게끔 유도한다. 마치 산파가 산모가 아이를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결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식의 웅변을 하지 않았다. 철학적 '아포리아'를 던지고, 상대방의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소크라테스는 분명히 말하는 시간보다 침묵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면, 침묵의 가치는 웅변의 가치보다 결코 모자라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침묵을 떠올리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현재 우리 정치의 모습은 플라톤이 말한 '중우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은 지키지도 못할 공약들을 남발하고, 시민들은 이에 열광한다. 무상복지 시리즈는 정책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추진됐고, 결국 졸속으로 진행 중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조용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행하는 이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앞에 나서서 호기롭게 떠드는 사람들만 주목받는 사회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주소다.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침묵의 성인이 필요하다. 내 말이 무조건 옳다며 상대방을 현혹하는 웅변가 혹은 달변가가 아니라, 상대방을 진정으로 깨우치게 해줄 수 있는 그러한 리더 말이다. 요즘 우리 정치권은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라 할 정도로 많은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 수많은 말들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깊이 있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라고 했다. 침묵하라고 말하는 이 짧은 말 한마디에도 커다란 진리가 담겨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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