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커즈와일 구글 이사는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2045년에 ‘특이점’이 온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특이점이란 ‘인류 전체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이때가 되면, 인공지능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계와 이론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때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상상조차 어렵다. 특이점이라는 것이 실제로 올진 알 수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과거의 기술 발전 시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성(modernity)'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현대를 규정하는 과학, 기술, 이성, 합리성 등의 가치들이 그 속의 인간들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개발한 과학기술 등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옭아맨다는 것이다. 인공지능도 기술의 일종으로써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문제는 인공지능 기술은 실제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술 비판은 기술에 대한 인간의 실질적인 통제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결국, 기술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문제로 지적하는 것인데, 인공지능은 인간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인류에게 보다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인류는 언젠가 인공지능이 자신들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 실존에 대한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시기라면, 아마도 인류는 발전된 의학 기술을 통해 죽음마저 극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인공지능이라는 타자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실존적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래 인류가 접하게 될 새로운 차원의 철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온전히 득이 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비판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리고 이들은 인류가 현대성을 극복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것의 전제는 기술에 대한 완전한 통제다. 인공지능 기술은 그 통제가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뛰어넘는 새로운 철학을 요구한다. 또는 인류가 죽음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기계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류와 기계가 구분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떠한 철학도, 논의도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