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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by 정재혁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사적으로도 그렇다. 모든 사회는 정의롭지 않은 상태에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돼 왔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 시대마다 등장했던 정의에 대한 논의, 즉 ‘정의론’이었다. 정의론들은 시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그 시대가 정의롭지 않다는 인식에 기반해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물론, 우리 사회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는 있다.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절대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던 과거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정의롭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더 ‘나아진’ 사회에 이들이 기여한 바가 없다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며,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그 사회에 분명한 모순이 존재한다면, 이들의 기여는 오히려 부정을 강화하는 셈이다. 확실히 우리 사회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지가 핵심이며, 이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의론이 된다.


정의론은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하나는 불평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개입에 대한 문제다. 이 둘은 매우 상반되는 정의론을 불러온다. 예를 들어, 불평등의 해소가 정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 정책은 국가의 개입을 문제시 삼는 사람들의 정의에 반한다.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 개입의 문제보다는 불평등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복지와 분배가 지난 대선의 주요 이슈였고,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복지와 분배 이슈는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국가의 힘을 강화시킨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을 강하게 했던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로버트 노직 등과 같은 철저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이었다. 특히 하이에크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궁극적으로 전체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노직은 복지를 비판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치안 등과 같은 ‘최소국가’로써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개입의 문제와 그에 대한 정의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불평등의 문제에 비해 이 문제가 과소평가받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제기된 정의론은 신분제 철폐를 통한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하나의 대의가 있었고, 프랑스혁명을 통해 실현됐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극도로 분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하나의 대의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정의에 대한 입장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정의에만 경도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기업의 자유나 경쟁의 정신을 강조하는 이들을 백안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의 사회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즉 현재 사회를 정의롭지 않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두 정의론은 같은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두 정의론 간의 선의의 경쟁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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