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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큰누나

by 정재혁

새벽에 잠이 안 올 때면 평소 묵혀뒀던 이런저런 생각과 사람이 떠오르곤 하는데, 오늘은 5개월 전 세상을 떠난 큰누나 생각이 났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큰누나를 싫어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지 못했던 큰누나는 부모님에겐 '아픈 손가락'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불편한 존재'일뿐이었다.


나랑 10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는 내가 10살 때쯤, 그러니깐 큰누나 나이로 20살 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고향의 2년제 전문대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 가 가출을 했는데, 세 달 정도 뒤에 돌아온 누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집에 돌아온 누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자주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가출했던 기간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10살짜리 꼬마가 그런 생각을 했을 리 없다. 누나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무서웠고, 그런 누나 때문에 부모님이 싸우는 것이 싫었다. 집안의 불화가 모두 다 큰누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은 내게 꽤나 상처였던 것 같다. 나도 나이를 먹고 누나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누나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어려웠다. 가끔씩 오는 전화에 '왜 전화했냐'며 짜증내기 일쑤였고, 고향에 내려가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지난여름에 내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본 누나는 예전보다 살이 많이 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 폭염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7월의 어느 날, 누나는 갑자기 쓰러졌다. 나는 그 날 난생처음으로 119 구급차를 불렀고, 몇 시간 뒤에 사망 판정이 났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단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죽으면 큰누나를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나나 작은누나한테 짐이 될까 봐 걱정했던 것인데, 친척 어른들은 차라리 일찍 죽어 부모님에게 효도했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슬픔도 잠시, 나는 금방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회사와 몇몇 친구 외에는 따로 알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너 누나 두 명 있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물으면 '큰누나가 죽어서 이제 누나가 한 명이야'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워서 '응, 그래'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 또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이제 '누나 한 명 있다'라고 소개한다. 큰누나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는 고작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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