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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열대야

by 정재혁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현상들이 있다. 열대야도 그러한 현상들 중 하나다.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불청객에 가깝기는 하지만, 막상 열대야가 없으면 여름이 오지 않은 것만 같아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열대야는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이는 누구나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평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도래했음을 느끼는 현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열대야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열대야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남들보다 더위를 덜 탄다던가 하는 체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에어컨과 같은 기술의 발달은 열대야와 같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쉽게 쫓아낸다. 에어컨이 일반적이지 않던 과거에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었던 열대야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렇지가 않다. 특히 최근에 태어난 세대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잘 드러난다. 과거 열대야를 경험했던 이들은 비록 현재는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공통된 경험을 공유한다. 현재의 사회적 지위나 빈부격차와 무관하게,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유대감을 가지며, 이는 일정 부분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문제는 열대야와 같은 공통된 경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평등이 나타남에 따라 점차 심화된다. 지금도 여전히 열대야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린 세대를 중심으로 이를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회는 경험을 공유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분리된다. 분리는 세대 간에서도 나타나지만, 세대 내에서도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세대 내 분리인데,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야 할 동세대가 벌써부터 차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열대야는 단순히 자연현상에 불과하지만, 우리 사회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제 곧 여름이다. 날짜로는 아직 봄에 가깝지만, 바깥 날씨는 한여름과 같이 무덥다. 이제 곧 열대야가 우리를 찾아오게 될 터인데,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전과는 조금 달려저도 될 것 같다. 짜증만 낼 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경험이라는 점에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위한 논의가 많은데, 여기에 기여하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하루정도 한 여름 에어컨을 끄고 열대야를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그 날 하루만큼은 열대야가 불청객이 아닌 반가운 손님으로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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