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물음표(?)를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재미 삼아 추측은 가능하다. 그 사람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다. 물음표는 기본적으로 질문이고, 질문은 대개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물음표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 위한 용도로 쓰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시에 그리고 현재에 와서도 가장 현명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가 물음표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말하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의 철학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물음표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누군가로부터 알기 위해 물음표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또 그 답변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엘렝코스(elenchos)’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다. 그가 주로 아테네의 젊은 청년들을 상대로 이러한 엘렝코스를 펼친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 아테네는 소피스트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소피스트의 주요 역할은 ‘웅변술’ 혹은 ‘수사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이 시기에 아테네 사회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능력이 필수였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한 대표적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처럼, 당시 아테네에는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간에 따라 진리가 변한다는 극단적 상대주의가 만연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결여된 채, 누가 더 말을 잘 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되는 그러한 시대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문제라 여겼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음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과거 아테네 사회는 현재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있다. 사회에서 권력을 갖는 수단만 바뀐 채로 말이다.과거에는 웅변술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돈이나 집안과 같은 배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차이는 꽤 중요하다. 웅변술이라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웅변술을 배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 계급이 매우 극소수였다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부모의 재산이나 배경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돼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태어날 때, 남자와 여자로 성이 구별되는 것처럼, 요즘 사회에서는 어떤 집에서 태어났는지가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아테네에 비해 더 민주적인 사회라 평가되는 요즘이지만, 과연 뭐가 더 나아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소크라테스의 물음표는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옳은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그가 사회의 젊은 청년들에게 엘렝코스를 행했던 이유도 젊은이들이 변화시켜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물음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 등에 대한 논의가 등장한 배경에도 이러한 물음표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고달픔으로 인해 물음표는 점차 ‘말줄임표(…)’로 바뀌고 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을 표출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돼 독약을 마시고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 사회의 물음표는 과연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