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문

감정적 유전

by 정재혁
Evernote_Camera_Roll_20140703_001922.jpg?type=w3 에티오피아의 기근, 스탠 그로스펠드, 퓰리처 사진전

부모와 자식이 서로 닮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목구비 혹은 키와 같은 신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진 속 두 사람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생김새의 유사함이기 보다는 그들의 눈빛에 담겨있는 슬픔 때문이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어린 아이의 눈빛이 이다지도 슬퍼보이는 것은 결코 신체적인 유전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슬픔을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일종의 '감정적' 유전이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감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는 아이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을 지니고 자란 아이에게 긍정적인 태도나 사고방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 속 어머니가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빈곤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식이 뼈가 앙상해지도록 방치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아이를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는 자책감, 현실의 고달픔 등이 겹쳐 저런 슬픈 눈빛을 빚어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빈곤도 슬픈 눈빛이 유전되는 것처럼 똑같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죽을 확률이 높고, 그 다음 세대 역시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진 속 아이는 엄마의 슬픔 뿐만 아니라 빈곤까지 마치 유전인 양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이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게 되는 셈이다.


아이는 부모가 물려주는 것을 거부할 방도가 없다, 그것이 신체적인 특성이든 슬픔이라는 감정이든 마찬가지다. 또 빈곤이라는 환경도 그렇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 측면의 유전은 반드시 부모 세대에서 끊어야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과 행복이라는 긍정적 감정을 물려주려면, 우선 부모가 그런 감정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당장 밥을 굶지 않는다고 행복할까. 불안정한 고용, 높은 집 값 등의 경제적 요인들은 어린 부모세대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이것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유발한다.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어렵다. 이를 잘 아는 요즘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불행을 더이상 유전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씁쓸한 현실이다.


세계에는 여전히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이 느끼는 절망감의 무게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 십 년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진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도하고, 또 행복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당장 굶지 않음에 감사하는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사회에 만연하는 여러 불평등에 침묵하도록 강요한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의 깡마른 몸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전에, 그들의 슬픈 눈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도 저런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