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미다락

피켓팅

by 제나
'피켓팅' : '피 튀기는 전쟁같은 티켓팅'의 줄임말.

BTS 같은 유명한 가수들의 공연일이나 그 예매일이 다가오면 언론에선 그들의 인기를 최대한 자극적인 단어로 우리에게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사를 통해 한 번씩은 접해봤을거다.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하게 하는 이 단어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게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오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티켓팅을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해야한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한 번 더먹지! 하며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보지도, 그를 보기 위한 기회를 얻고자 시간을 써 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경험이라면 대학생 때 환상적인 시간표를 만들기 위한 수강신청 오픈런 정도?

근데 그랬던 내가 애엄마가 되어서는 이 '피켓팅'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또 다른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환절기가 찾아오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그 시기를 몸으로 보여준다.

콧물, 기침, 기관지염, 폐렴, 고열 등 계절의 변화를 참 성실하게도 몸으로 겪어낸다.

우리딸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리면 어릴수록 그 자체가 에너지덩어리라 성장하는 것도 쑥쑥, 병이 생기면 그 병도 쑥쑥 진행시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콧물이 많아지면 그 콧물이 뒤로 넘어가 기침을 만들고 그 기침이 심해지다 보면 폐에 부담이 가서 폐렴이 생기고 입원치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안타깝고 끔찍한 건 이렇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채 일주일도 안된다는 점이다.

아마 그래서 나를 포함한 엄마들이 아이 기침이 심상치 않거나 누런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병원에 뛰어가는 거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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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를 낳고 보니 그렇게 찾아가는 병원들은 아무렇게나 골라서 가는 병원이 아니었다.

내 아이가 아플 때 아이들을 잘 치료해주고 잘 봐준다는 일명 '좋은 의사'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병원을 고를 때 엄마들은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출생한 아이라면 누구나 맞아야하는 bcg 주사조차 이 주사를 가장 잘 놓는다는, 그리고 이 조그만 아이의 상태를 잘 본다는 의사를 찾기 위해 맘카페를 이리저리 찾아보며 병원을 고르고 골라 갔다.

그렇게 간 병원이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호도가 높아 환자가 많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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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딸과 함께 정착하게 된 병원은 총 두 군데였는데 그 중 한 곳은 입원까지 가능한 한 어린이 병원이었다. 집에서 빠르면 15분, 오래 걸리면 30분 가까이도 걸리는 곳에 있지만 거리 생각않고 달려가게 되는 곳이 되어 버린, 이 병원을 택한 이유를 꼽아보자면


-신설이라 깨끗함.

-일반 소아과 규모보다 큰 어린이 병원이라 여차하면 입원까지도 가능.

-아주 친절한 원장님.


이 세 가지 정도인데, 이 중 가장 맘에 든 요인은 '원장님' 이었다.

처음 이 병원을 맘카페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 글들의 공통점은 별 다섯개, 아니 백만개짜리의 진료후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난 이미 진료를 보기 전부터 이 원장님께 매료된 걸 지도..

무더운 여름, 아이가 원인모를 고열에 계속 시달려 집 앞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어 결국 걸음하게 됐었다. 이 병원 환자로서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딸 이름 앞에 20명 넘는 대기환자를 보며 답답할 줄 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원장님이길래 이렇게까지? 싶으면서 진료가 기대됐다. 그렇게 한 두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우리 딸의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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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같은 진료실 밖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차분함과 온화함이 가득한 진료실이었다.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내게 상냥한 말투로 먼저 인사를 건넨 원장님은 다정한 눈길로 우리를 반겼다. 30년 넘게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남자 의사선생님의 찐다정함에 1초 당황스러움과 어색함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엄마의 반응은 많이 겪어봤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아이를 살피던 원장님은 혹여라도 아이가 차갑게 느낄까 연신 청진기를 자신의 손바닥에 비비고 있었다. 첫 번째 심쿵포인트였다.

그 모습에 감동받아 뚫어지게 쳐다 본 원장님의 팔목엔 묵주팔찌가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청진기를 잡은 손가락엔 십자가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마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소아과 의사 안정원의 현실판아닌가? 와 또 심쿵하네...? 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원장님은 이미 진료를 마치셨더랬다.

구내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아마 이 전 병원을 방문했을 땐 구내염이 표피에 완전히 발현되기 전이라 목감기로 오진했을 수도 있을거라 하셨다. 단순 열감기로 진료했던 타 병원의 진단까지 배려해주시는 인품에 이 분께 진료를 보기 위한 두 시간의 기다림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맘카페에 엄마들이 이 원장님을 찬양하듯 후기글을 쓰고 예약도 전혀 되지 않는 이 분을 만나기 위해 아침 댓바람부터 그 긴긴 기다림을 자처하나 했는데 모든게 다 이해가 된 첫 진료였다. 아이는 이 분의 진료 후 처방된 약을 먹고 언제 아팠냐는 듯 열이 내리고 금방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렇게 그 날 이후 난 이 분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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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런 식으로 많은 엄마들이 이 분의 팬이 된거겟지. 유능한데 인품도 좋고 사실 거기다 이 분은 키도 크고 외모도 훤칠했다. 그런 비주얼로 아이들의 아픔 뿐 아니라 아이가 아파 마음 졸이고 속상한 부모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니 이 분을 원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우리 신랑마저 이 원장님께 반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원장님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고 그만큼 대기시간은 길어져만 갔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종종 생겼지만 그만큼 신생 팬(?)이 생겨버리는 현상에 결국엔 접수표를 빨리 뽑지 못하면 이 선생님껜 아예 진료를 보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 뒤로 나는 접수표를 최대한 빨리 뽑기 위해 병원 오픈 하기 30분, 1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대기 인원은 늘 20명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나 어김없이 환절기가 찾아오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느 날의 새벽 6시 반. 어김없이 심해진 아이의 기침에 접수표를 뽑으러 집을 나섰다. 9시에 진료 시작인데 이 정도로 일찍 가면 내가 1등이겠지! 라고 호언장담하며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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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접수표를 뽑을 수도 없게 병원문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내 앞엔 다섯명의 엄마, 아빠, 할머니 등이 줄을 서 있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 온거야? 하며 내쉰 한숨이 기다리던 이들의 정적을 깼다. 내 한숨에 답하듯 너그러운 인상의 할머님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난 손녀가 아파서 여섯시도 안 돼서 왔어요."하신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소아과임을 다시 깨닫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안타까워졌다.

진료 시작은 9시. 우린 이미 세 시간 전부터 소리없는 전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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