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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12. 2022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


한국을 떠나 런던과 파리로 도망쳐 온 지 벌써 14일의 시간이 지났다. 내가 원래 속해있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여행자의 신분으로만 누릴 수 있던 일상도 이젠 안녕이고, 파리의 변덕스러운 하늘과 사람들, 그리고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거리까지 모두 안녕이다.


내 일상이 잠시 일시 정지되어 있는 곳에서 내가 다시 보내게 될 날들은 이전과 다를 게 없겠지만, 이곳에서 보낸 14일의 여정 덕분에 나는 꽤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런던과 파리에서 보낸 14일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을 보았고, 내가 잊고 지내던 감정과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도망'을 떠나온 도시에서 얻은 수확치고는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사실은 더 반짝거리는 것일지도 모르는, 그런 귀한 자산을 얻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들을 당신들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이곳에서 만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들이 내 일상에 미칠지도 모를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여태껏 쉼과 멈춤, 그리고 내 일상을 버리고 어딘가로 도망치는 일이 조금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삶을 살아가며 가끔씩 벽이란 걸 마주하게 될 때 그것을 넘기 위해 또는 무너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패배자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싸우는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지낸 채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라 또 다른 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매번 선택해오던 도전이 아닌, 패배자의 것이라 치부하던 '일상으로부터의 도망'을 선택했다. 과거의 내가 하던 다짐과 예상,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과거의 나는 내가 만약 도망이란 걸 선택하게 된다면 그때는 무언가 정말 많이 힘들거나, 잃을 게 없을 정도로 가진 게 없을 때 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런던이라는 도시로 도망을 쳐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의 일상은 오히려 이전보다 평온했고, 그 당시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가진 게 많았다.


즉 이번은 내가 생각해오던 도망의 타이밍이 전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나는 런던과 파리로 도망을 왔다. 그리고 도망자의 마음으로 온 이곳에서는 필연인지 우연인지 유독 쉼, 멈춤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쉼, 멈춤, 도망이란 건 인생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절대악과 같은 존재인 걸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답은 무엇일까?



가만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조차 매초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인간은 본래 흔들리는 존재인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조차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인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감에 있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겠는가.


그래서 지금 흔들리며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도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나와 당신이 느끼는 이 모든 흔들림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인지, 아니면 신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음인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흔들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그냥 그런 존재일 뿐인 거라고.



가끔은 흔들리다 마음 한곳이 부딪혀 울기도 하고, 또 길을 잃기도, 때로는 잠시 나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거라고. 매초, 매분, 매시간, 매일, 매월, 매년 그렇게 흔들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게 인생 아니겠냐고. 그러니까 우리는 여태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걸어가면 되는 거라고.


힘이 들면 풍경 좋은 곳에 잠시 앉아 쉬기도 하고, 친구 몇 명 불러내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천천히,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거라고. 멈춰 쉰다는 건,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단계라는걸, 부디 잊지 말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씩씩하게 그 길을 걸어오느라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그러니 잠시 쉬어도 된다고.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당신을 조금 더 소중히 대해주라고.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 청춘이기에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생이 아름다워서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이기에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흔들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흔들린다.


가끔일 수도 있고, 자주일 수도 있다.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가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올 수도 있다. 모두 정상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흔들림은 그대의 부족함이나 잘못에 기인한 결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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