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Oct 12. 2022

내가 파리로 도망친 후에서야 알게 된 것


파리에서의 하루를 오로지 몽생미셸 투어를 위해 빼 두었다. 일일 투어는 대부분 가족단위의 관광객, 그리고 최소 2인 이상의 관광객이 많이 선택하는 일정이다.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거리 일정일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심심하니까.


하지만 애초에 파리라는 도시를 혼자 떠나온 나 홀로 여행객인 나는, 그 시간마저 오로지 혼자서 보내고 싶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이 때로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내가 런던이라는 도시로 떠나올 때 나의 상황이 그러하였고, 내 감정이 그러하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새벽 5시 반에 개선문 앞에 모여 단체 버스에 올랐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창밖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고, 첫 목적지인 에트르타에 내릴 때는 어느새 도시에 이미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뒤였다. 프랑스에서 처음 맞이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사람들은 쏜살같이 자신들의 짝들과 함께 사라졌다. '주차장에 몇 시까지 모여달라'라는 가이드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에트르타는 모두가 처음 오는 관광지였지만, '저 앞으로 가시면 에트르타의 상징인 두 마리의 코끼리를 볼 수 있어요'라는 가이드분의 말만 믿고, 모두가 앞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목적지인 코끼리 바위까지는 도보로 약 8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라고 했다. 중간중간에 양옆으로 여러 골목이 나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곳으로 가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의 목적지가 분명했으며, 그곳을 이미 다녀온 자가 '저 앞으로 가면 만날 수 있어요'라고 일종의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차장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끼리 바위를 만났다. 그가 말한 것처럼 정확히 8분이 지난 후였다. 아니 그보다 전에, 우리는 거대한 바다를 만났다.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우리가 길을 걸어오는 동안 저 멀리 바다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고, 그곳에 정말 바다가 있었다.



드넓은 바다 어딘가에서 생겨난 파도는 땅에 이르러 죽음을 맞고 다시 새 생명을 얻는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지만, 파도는 오늘도 땅에 도착하기 위해 대륙과 대륙 사이를 쉼 없이 달려왔을 것이다.


그간의 기나긴 여정이 무색할 정도로 파도는 해변가에 다다라 하얗게 부서지고, 해변에 놓인 모래 몇 알을 가지고 다시 조용히 바다로 돌아갔다


파도가 땅에 닿았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그림과도 같은 이곳의 풍경과 감상 몇 가지를 가지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프랑스의 작은 항구 도시, 옹플뢰흐로 향했다.



옹플뢰흐는 노르망디의 진주로 불리는 작은 항구 도시이다. 전쟁 때 주변의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었지만, 옹플뢰흐는 유독 도시의 크기가 작아 눈에 띄지 않았고, 덕분에 지금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도시 한편에 마련된 작은 주차장에 내려 조금 걸으니 도시는 감춰뒀던 모습을 살며시 드러냈다.


다닥다닥 붙어 항구를 따라 가지런히 놓인 건물들과 요트들이 한데 섞어 동화 같은 옹플뢰흐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높은 건물에 오르지 않아도, 굳이 어딘가를 가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항구에 잠시 걸 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옹플뢰흐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그렇게 자주, 별것 아닌 것들에 행복을 느끼곤 했다



이번에도 약속된 시간까지 주차장에 모여 달라는 가이드분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부산스럽게 흩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한 곳은 집합 시간을 알려주기 전 가이드분께서 말씀하신 기념품 가게와 포토 스폿이었다.


나도 그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도시가 작아 어느 곳으로 가든 간에 결국 끝에는 우리가 모여있던 항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처음 만난 골목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갔다.


결국에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좁은 도로 양옆으로 놓인, 조금은 빛이 바랜 건물들과 그와는 대조적인 원색의 간판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지금까지는 알지 못한 새로운 감정으로 나를 인도했다.



나는 그 골목 끝에서 성당을 만났고, 잠시 들어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성당 안에는 평온한 적막이 흘렀다. 그게 또 마냥 좋았다. 꿈과 같은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리고 혼자여서 좋았다. 이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감정이라는 건, 그냥 막 생겨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아주 천천히 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어쩌면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들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게, 사실 가만히 있는 게 아닌데. 항구에 정박한 저 요트들도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고, 그들도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뿐인데,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늘도 파랗고 풍경도 너무 아름다운데 맘은 괜히 더 복잡해졌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물고 와 내가 그것에 서서히 잠식되려 할 때 즈음 이제 곧 집합 시간이라는,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파리를 떠나온 것으로 보이는 행인의 말에 나는 다시 어딘가에서 옹플뢰흐로 돌아왔다. 이제 마지막 종착지인 몽생미셸로 떠날 차례가 되었다.



어느새 파리를 떠나온 지 10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내 눈앞에 거대한 수도원 하나가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몽생미셸이었다. 그리고 몽생미셸을 보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와! 나는 이걸 보기 위해 파리에 왔구나



사실 노르망디는 1년 365일 중에서 300일이 비가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날씨가 흐리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오늘처럼 맑은 날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가이드분의 이야기를 듣자 역시 파리 여행 중 하루를 빼 두 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 거라곤 잿빛 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몽생미셸 수도원이 전부이지만, 파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첨탑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섬 모양의 수도원을 보고 있자면 당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될 것이다.



몽생미셸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딱 하나다. 다리를 지나고, 거대한 문을 지나야 만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위엔 조수 간만의 차로 만들어진 거대한 갯 뻘이 전부이고, 그 갯 뻘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바다밖에 만날 것이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해진 길로 드나든다. 그런데 왜 꼭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잘 닦아진 길 놔두고 다른 길로, 길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때로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다. 어렸을 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아마도 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변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고, 대학 때는 취업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도착지에는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에 도착해도 나는 다른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아주 잘 알면서도, 나는 항상 그곳에 닿기 위해 매일을 쉬지 않고 달렸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게 아까워서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았다. 남들보다 시작이 느려서 먼저 출발한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죽어라 달렸다. 그들이 가는 목적지와 내가 가는 목적지가 다를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렇게 무작정 달렸다.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다. 근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였다.


그래서 좀 억울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일상으로부터 도망을 쳤다. 런던으로, 파리로 도망을 왔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는, 아버지가 내게 건네던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혹자는 말했다. 우리는 '포기'와 '멈춤'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다. 시작하는 것만큼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멈추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시작을 하는 사람은 승리자로, 포기를 하는 사람은 패배자로 낙인찍는다고 했다. 도망치듯 떠나온 런던과 파리에서 보낸 14일의 여정 동안 내가 가장 깊게 공감한 구절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시작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 주듯 포기도, 쉼도, 멈춤도 부끄러운 것이 아닌 누군가의 박수를 받고 응원을 받아 마땅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용기가 없는 자들이 내리는 선택이 아닌, 용기가 있어야만 내릴 수 있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길은 본래부터 땅 위에 나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법이니까.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어가고 싶은 길을 골라 부지런히 걸으면 된다
이전 13화 박물관이 아닌 건축물로서의 루브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