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여러 곳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아무래도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세 미술관 정도가 아닌가 싶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은 대영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독특한 외관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루브르에 소장 중인 여러 미술품, 그러니까 그중에서도 모나리자의 역할이 컸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미술관은 가도 박물관은 가지 않는다'라는 내 여행 철칙 덕분에 루브르 박물관은 여행 일정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관광 명소가 되었다. 대영 박물관의 역할이 컸다. 그곳을 다녀오고 나서 기획 전시회가 아닌 일반 박물관은 골동품 상점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물론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충격을 먹긴 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싶다면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오르세 미술관을 가는 게 더 좋은 선택이지 않나?
파리를 떠날 날이 곧 다가오는 상황에서 코딱지만 한 모나리자를 보자고 몇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낮에 있던 일정이 날씨 문제로 취소되면서 저녁까지의 시간이 붕 떠버렸다. 점심 식사 장소 주변에는 딱히 갈만한 곳도 없고, 파리의 명소 중 루브르 박물관이 가장 가까웠다. 게다가 파리를 떠나기 전, 도시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내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마침 또 그날은 루브르 박물관의 휴무일이라고 한다.
그래, 어차피 뮤지엄 패스도 있고, 딱히 갈만한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으니, 루브르 박물관이라도 가서 그 대단한 모나리자라도 보고 오자
루브르 박물관이 내게 준 첫인상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그다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미지를 한 번에 뒤집어엎을 수 있는 건 그들의 건축물이 있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도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루브르의 시초는 12세기 말 필립 2세 왕이 세운 요새이다. 14세기에 샤를 5세가 낡은 요새를 저택으로 바꾸었고 16세기에 들어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감명받은 프랑스와 1세가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궁전을 새로 세운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루브르는 국민들을 위해 국가의 걸작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라는 사명 하에 박물관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현재의 루브르 박물관이 되었다.
본래 궁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보니 루브르는 내부 장식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38만 점의 예술품이 보관되고 있으며 이 중 약 3만 5천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의 수가 많기도 하고, 박물관 자체의 규모도 워낙 커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든 작품을 관람하려면 최소 2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검색하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 TOP 10'과 같이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들을 위한 가이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가이드 콘텐츠 덕분인지, 루브르에서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의 앞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루브르에서 만난 모나리자는 소문대로 크기가 작았고, 작품 사진 한 장을 찍어보겠다고 몰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러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프랑스까지 가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모나리자를 보고 왔다'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루브르를 찾는 것일까
모두의 사랑을 받는 모나리자는 그 유명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두꺼운 방탄유리 속에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 여러 번의 테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11년 8월 22일에는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도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건 발생 2년 뒤인 1913년 3월 12일에 범인이 잡히는데, 절도범은 모나리자의 보호 액자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방탄유리 속에 보관된 모나리자와 그걸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까지, 루브르는 내가 이제껏 봐오던 박물관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지만, 사실 나에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모습은 루브르 박물관의 건물 구조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내부는 시대별 전시실로 공간이 구분된다. 한 층에서의 높낮이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고 칸막이 등을 통해 각 전시실이 구분될 뿐이다. 방문객은 전시품 뿐만 아니라 색, 조명, 천장의 높이 등 다양한 요인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분하는데, 박물관의 내부 공간이 협소하고 각 전시실 사이의 높낮이 차이가 적을 수록 공간 구분을 위해 극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된다.
공간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명이다. A 전시실과 B 전시실의 내부 인테리어, 벽면 색상, 조명 온도 및 밝기 등을 동일하게 사용하면 공간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조명을 조절하여 '너는 지금 A에서 B 또는 B에서 A로 이동하고 있고 여기는 그 중간 통로 정도가 되는 공간이야'라고 힌트를 준다.
하지만 공간을 말 그대로 구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수록 조명이 큰 차이로 달라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뚝뚝 끊기는 느낌을 주기 쉽다.
루브르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워낙 커서, 여러 요소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이 가능한 편이다. 이런 것들만 잘 조절되어도 공간 구분이 잘 되어있는 박물관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을 테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바로 공간별 높낮이 차이이다. 특히 각 전시실을 잇는 복도의 높낮이 차이는 방문객의 공간 이동을 유도하고, 공간 이동에 대한 인지를 돕는다는 이점이 있다.
전시실별 높낮이 차이는 공간 구분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방문객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거대한 중앙홀과 복도가 한눈에 담기는 공간 구조와 그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에 우리는 압도된다. 루브르 박물관은 38만 점의 다채로운 예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지만, 어쩌면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예술품인지도 모르겠다.
내 여행의 절반 이상은 현지의 건축물과 그 공간을 구경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건축가 또는 공간 디자이너가 건물에 담으려는 생각과 느낌, 그리고 실제 구현 방식이 때론 유명 화가들의 예술 작품보다 흥미롭다. 사람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여러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공간 역시 사람들로 채워져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공간이 채워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변수가 생기고, 그로 인해 초기 기획자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기도 할 테다. 기획자에겐 다소 아쉬운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변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위험이 많다는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도 결국 최종 종착지는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는 만큼, 다양한 차이에 부딪히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여행길이 될 것이다. 엄청난 혁신이 아닌, 사소한 편안함이 필요한 일이다. 혁명을 일으켜 문화를 바꿀 것이 아니라, 내가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도 결국 최종 종착지는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는 만큼, 다양한 차이에 부딪히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여행길이 될 것이다. 엄청난 혁신이 아닌, 사소한 편안함이 필요한 일이다. 혁명을 일으켜 문화를 바꿀 것이 아니라, 내가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 운이 좋다면 나의 일부가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고, 그 문화의 일부는 곧 나의 일부가 될 테다
그래, 그냥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