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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an 24. 2024

진짜 나를 위한 소비를 합니다

취향을 발견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드니까

부지런히 모아도 집 사기는 힘든 시대


직장인 월급을 부지런히 모아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가 힘든 시대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부지런히 저축을 하는 사람들, 두 번째는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보다는 현실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 마지막 세 번째는 두 부류 사이에서 적당히 줄을 타는 사람들.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 번째 사람들로 분류되는 삶을 살았다. 내가 그리는 미래라는 게 실존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완전히 포기할만한 용기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쓰는 삶을 선택했다.


물건을 구매할 때 늘 가성비를 따졌다. 그렇게 억눌러진 욕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곤 했다. 아주 가끔이기는 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하루에 수백만 원을 쓰고 오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집을 둘러봤을 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서로 조화되기는커녕 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힘든 물건들이 각자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것들인데 물건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소비의 기준은 취향이 되었습니다


물건의 주인이 내가 되기 위해서 나만의 소비 기준을 하나 세웠다. 돈을 쓰는 기준은 딱 한 가지.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인가?


더 이상 가성비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이 소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성비를 따지며 구매한 물건들은 얼마 쓰이지 못하고 구석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물건들을 구매할 때에는 그 부작용이 크게 다가왔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적당한 물건을 구매했는데, 쓸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만 눈에 밟혔다. 취향을 포기하면서 얻은 이득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격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게 내 취향에 맞는가? 실제로 이게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가? 를 기준으로 구매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소비 금액이 너무 커지지는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소비가 줄어든 영역이 있었다. 처음부터 취향과 필요를 조목조목 따져보고서 구매한 덕분에 이중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물건을 쓰면 쓸수록 그에 대한 애착도 생겼다. 물건 덕분에 그와 함께하는 어떠한 행위가 좋아지기도 했고, 또 그 덕분에 다시 그 물건이 좋아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도 아니고, 스스로와 타협한 소비도 아니었다. 진짜 나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비를 하면서 삶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가방 속 물건을 봐도, 집에 놓인 가구와 매일 쓰는 필기구를 봐도 내가 보여 좋았다. 색이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진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칭찬을 듣기 시작한 건 딱 그 무렵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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